네트워크는 체득이다: 한 사람의 성장일기

네트워크는 체득이다: 한 사람의 성장일기

회사에서 붓을 들고 몰두해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스타트업 대표를 보며 한 멤버가 묻는다.

“성영님, 언제부터 그림 그리셨어요?”

“토종꿀 프로젝트가 처음이에요.”

“아니, 디자이너로 일한 지 20년 넘지 않으셨어요?”

“그동안은 돈을 벌기 위해 그림을 그렸어요. 그때도 즐겁게 작업을 했고 원하는 것을 그렸지만, 지금 온 마음과 진심으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어요. 이 토종벌이, 저에게는 첫 그림입니다.”

우리가 토종꿀의 첫 밀원지, 연천을 다녀온 것은 작년 6월이다. 모두가 반대했던 프로젝트였다. 서울대 푸드비즈랩에서 토종벌을 살리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토종꿀을 상품화하는 역할에 프롬의 참여를 제안했다. 당시 함께 협업하고 있던 경기대 꿀벌질병연구소 팀은 토종벌의 DNA 검사부터 시작해서 날개짓으로 꾸덕하게 만든 토종꿀인지 인위적으로 가열한 꿀인지 판별하는 등 정밀성분검사 키트를 개발한 상태였다. 그전까지는 토종꿀인지 확인할 방법이 존재하지 않았으니 알음알음 지인의 말을 믿고 사는 정도였다. 게다가 국내에서 누가 어디서 토종벌로 한봉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데이터도 구축되지 않았었고 그러니 토종꿀 시장이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멸종 위기의 토종벌을 살리는 것은 다양성을 보존하고 지구의 생태계를 살리는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믿을만한 팀들과 토종꿀을 상품화하는 과정은 말만 들어도 설레는 일이었다. 하지만 계산기를 두드리면 답이 나오지 않았다. 존재하지도 않는 시장, 꿀의 양은 너무나 희소하고 게다가 토종꿀의 가치가 소비자들에게 알려지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특히나 매달 생존의 문제가 달려있는 작은 스타트업이 자체 브랜드를 만들어 책임을 진다는 것은 무모한 도전이었다. 우리를 아끼는 많은 분들이 다 반대를 한 것은 당연했다.

그런데 모든 결정은 밀원지를 처음 방문한 그날 이뤄졌다. 아니, 결정이라기 보다 여기서부터는 토종벌과 사랑에 빠진 한 사람의 이야기다. 이 한사람의 이야기는 무에서 유를 만들어낸 과정에 관한 것이다. 작은 하나에서 시작해서, 연결을 만들고, 그 네트워크와 자신이 하나가 되는 체득의 과정 자체가 곧 마케팅임을 보여준 사례가 되었다. 우리는 이것을 ‘오가닉(살아있는) 마케팅’의 교과서라고 불렀다. 무엇보다 옆에서 지켜본 멤버들이 함께 감동하고 전염되는 과정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2차 파도를 준비하면서 그 씨앗이 된 첫 번째 사이클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기록해 두고 싶어 글을 쓴다.

한 사람의 강력한 Why: 왜 이 일을 하는가

서울대 푸드비즈랩과 함께 방문했던 2020년 6월의 연천

처음 방문한 연천, 비무장지대가 시작되는 지역의 넓은 들판과 산기슭, 지천에 흐드러진 초록은 평화로웠다. 거기서 토종벌을 만나고 자연 곳곳에 숨겨놓은 벌통을 지키는 생산자들의 한결같은 웃음을 만났다. 토종벌들은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 벗어나지 않고 그곳의 들꽃, 나무, 산들거리는 바람과 자연의 호흡을 날갯짓에 담아 첫서리가 내리는 11월, 꿀을 딱 한 번 뜰 때까지 열심히 일한다. 한 지역에서도 벌집이 어느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주변 꽃들과 들풀, 나무, 환경 즉 ‘떼루아’가 다르니 놀라울 정도로 서로 다른 맛과 향을 지닌 것이 토종꿀이다. 그래서 멈춰진 시간과 공간이 벌집 하나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놀라운 이야기를 듣는 내내, 그 옆에 꿀벌들 만큼이나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 무엇이 저들을 저렇게 웃게 만드는 것일까. 이 한 사람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 꿀벌들은 그 비밀을 오직 이 한사람에게만 알려주었다. 시간이 좀 더 흐른 후에 우리는 그 얘기를 듣게 된다.

꿀벌이 그에게 가르쳐준 것은 행복한 공동체의 원리였다. “꿀벌은 각자 자기의 자리에서 자유롭게 오늘을 살고 있어요. 그런데 그 행동 하나하나가 공동체에 이로움이 되잖아요. 꿀벌은 인간을 위해 일하는 것도, 인간이 꿀을 빼앗는 것도 아니에요. 그냥 우리 각자가 자기의 역할을 해내고 서로를 느끼며 하루를 온전히 살아내는 것, 이런 삶이 행복하고 좋다고,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살고 있는 그 모습 그대로가 좋은 것이라고 꿀벌은 몸짓으로 말을 해주고 있었어요.”

알듯 말듯 했다. ‘함께 살아간다’라는 것의 소중한 가치를 인간에게 가르쳐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돌이켜보면 이 당연한 비밀이 당시 우리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꿀벌들은 각자 개체로 존재하지만 서로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하며 하나의 군락을 이룬다. 각자 독립적이면서 또한 단일을 이루는 초개체다. 세상의 만물을 연결하고 생명 관계를 유지시키는 주체이자 원리이기도 하다. 우리가 먹는 것의 4분의 3이 꿀벌들의 도움없이는 만들수 없다는 사실조차 우리는 기억해내지 못하지만.

그는 이 메시지를 전해야 했다. 그는 그림을 그리고 말을 하고 싶어졌다. 이성적인 계산보다, 지켜주고 싶고 전하고 싶은 가치가 먼저였다. 이 시각 이후 지금까지 약 8개월간 그는 토종벌 프로젝트에 몰입해 있다. 처음에는 우리 팀의 멤버들 모두 깊게 생각하지 않거나 심지어 삐뚫어진 시각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하루하루가 생존인 스타트업에서 정말 저렇게 고귀한 생각으로 ‘지켜주고 싶은 가치’에 몰입하며, ROI를 생각하지 않고 뛰어들 수 있다는 말인가. 그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그것도 대표가 그래도 되는건가.

하지만 한 사람의 이 강력한 ‘왜 이 일을 하는가 (Why)’가 증명 되면 얘기는 달라지게 된다. 결국 공감하고 감동하고, 이 프로젝트에 기꺼이 참여하는 사람들을 팬으로 만든다. 더 큰 사이클로 함께 나아갈 수 있는 동력이 되고 참여감을 만들며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항해의 나침반이 된다. 다만 거기까지 꽤나 긴 시간과 인내심이 필요하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꾸준히 묵묵히 걸어가기

우리 팀이 모두 각자의 과중한 업무로 바쁜 동안 그는 혼자 일했다. 밀원지를 다니고 생산자를 만나고 성분조사팀을 만나고 모든 신뢰의 과정을 동반하고 방산시장, 충무로, 을지로를 다니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다. SNS 활동을 전혀 하지 않던 그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초반에 거의 없었다. 그래도 계속 생각을 기록했다. 알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토종벌의 삶과 함께 밀원이 피고 지고를 반복하는 이유처럼 그곳의 삶을 함께 살아내는 농부의 모습과 그 모든 과정이 온전히 기록되고 지속적으로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을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상품화까지의 모든 과정이 숨김없이 투명하게 로그로 기록되기 시작했다.

서울대 푸드비즈랩의 문정훈 교수는 이미 멸종 위기의 토종벌에 대한 상세한 연구 내용과 밀원지 방문기 등의 콘텐츠를 공유해오고 있었다. 풍부한 콘텐츠에 언제나처럼 그의 포스팅은 재미까지 있으니 사람들의 관심은 당연했다. 처음으로 시장에서 론칭될 것이라는 토종꿀의 브랜드, 병의 생김새, 각종 디자인, 패키지에 대한 토론도 뜨거웠다.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며 그는 무슨 디자인을 내놔도 욕을 먹겠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토종벌 캐릭터가 담긴 편지

하루는 전화통을 붙들고 연신 한숨을 내쉬는 소리를 들었는데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는 패키지 문제 때문이었다. 모든 성분 검사를 통과한 꿀을 소분도 했고 연천과 제천 각 생산자의 브랜드가 독립적으로 세워질 수 있는 디자인까지 완료한 상태였다. 문제는 택배로 발송할 때 2개의 꿀병이 서로 부딪히지 않으면서도 귀한 선물포장까지 되려면 쓰레기 더미를 배송해야 할 판이었다. 귀한 토종꿀처럼 버릴 것 하나 없이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지 막막해 했다.

그로부터 며칠이 흘렀을까. 해결책을 찾았다며 우리에게 프로토타입을 보여줬을 때 모두 깜짝 놀랐다. 버릴 것이 하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절대로 깨질 위험이 없는, 심지어 완충 패키지 자체가 작품이 될 수 있게 한 것이다. 한겹한겹 꿀벌들이 쌓은 벌집을 형상화한 모습이었는데 배송을 받은 후에는 책상위에 놓고 인테리어 소품으로 쓸 수 있는 스테이셔너리였다. 이렇게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밖의 고객들보다 우리가 먼저 그의 팬이 되기 시작했다. ‘저게 되겠어? 이게 더 바쁘지 않나?’ 하던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매일이 쌓여 그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이해하게 되었고 진심을 신뢰하게 되었으며 그의 방향을 지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비로소 함께 걷기 시작했다.

프롬 토종꿀 패키지
뚜껑은 꿀을 보관할 수 있는 받침으로, 몸체는 핸드폰, 꽃, 연필을 꽂아둘 수 있는 스테이셔너리로 활용할 수 있다.
택배 상자에 동봉한 편지에는 스테이셔너리의 사용법까지 친절하게 그려져 있다.

함께 걷는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바라보기

프로젝트를 하다 보면 우리 본성이 그런 것처럼 목적 지향적으로 돌변하기 마련이다. 조직의 팀원이든, 구매자든, 협력 파트너든,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수단으로 쉽게 전락하곤 한다. 그래서 한 방향을 보고 함께 달린다고 하지만, 그것이 협업이라고 하지만 서로를 바라볼 시간이 없다. 한참을 달리다 보면 어느새 사람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직원이든 파트너든 고객이든 누구든 함께 걷고 있는 동료를 바라보는 것, 가장 중요한 일이며 그 과정에 일을 하는 이유가 있다. 처음에는 느린 것 같지만 어쩌면 가장 빠르게 갈 수 있는 방법이다.

프로젝트 처음부터 문정훈 교수는 밀원지의 “떼루아”를 강조했다. 마치 와인의 떼루아와 빈티지처럼 토종꿀도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어떻게 이 방향성을 브랜딩에 담아낼 수 있을까 집요하게 고민했고 그 흔적은 결과물로 하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금 2차 에디션을 준비하면서 당시 함께 했던 분들과 다시 한번 뭉칠 수 있는 이유는 서로를 단순한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바라보는 지점이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진심 어린 감사와 배움, 응원과 도움이 서로를 바라보게 했다. 그러면서 파트너들, 테스터들, 고객들도 토종꿀이라는 상품을 너머 한 사람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 한사람 한사람에 대한 감사의 기록으로 채워진 이 시간이 결국 신뢰를 만들었다.

진심을 담은 꿀 병 하나하나에 고유번호를 적고 정성을 다해 세상에 하나뿐인 상품을 제작했다. 1월 5일, 토종꿀 사전예약이 시작되었고 준비한 수량은 18시간 만에 완판이 된다. 판매가 종료되자마자 축배 대신 그가 한 말은 “감사합니다, 이제부터 정말 열심히 닦고 묶을게요.” 무슨 말인가 했는데 그 다음날 우리는 앉아서 스테이셔너리 제작 과정에서 종이에 묻어난 그을림을 일일이 닦고 말리고 포장했다. 옛날 같았으면 왜 이런 일을 하느라 시간을 낭비하느냐 불만 가득했을 텐데 우리는 어느새 순한 양들이 되어 즐겁게 수작업을 재잘재잘하고 있었다.

고되고 어려운 작업은 더 남아있었다. 예정된 배송날짜가 다가왔지만 폭설과 한파로 날씨가 추워 배송 과정에서 꿀이 얼기라도 하는 날에는 이 모든 수고가 허사였다. 결국 서울지역은 팀을 나눠 직접 전달을 하기로 결정하기에 이른다. 아마도 진심을 다한 그의 여정이 잘 마무리되기를 응원하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기꺼이 택배기사가 되어 구매하신 분들, 선물 받으시는 분들께 어떤 상품인지 직접 설명도 드리고 인사도 드리며 얼굴을 마주하는 감사한 시간이 기록되었다.

[떠나보내는 토종벌을 그린 마음]

함께 키워온 토종벌의 마음이 100명의 사람을 찾아 만나진 날.
토종 꿀벌이 주인을 만난 날.
함께 그리고 싶은 그림이 많습니다.
꿀벌의 몸에 비친 우리의 풍경 그 위에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
무지개 징검다리를 걷고 있는 꿀벌의 모습.

한사람의 성장, 새로운 사이클의 시작

우리는 다른 사람들보다 비교적 먼저 본 것을 전하기 위해 글을 쓰고 강의를 하고 서비스를 만들고 시장에서 실행해왔다. 우리는 시장이, 가치가, 제품이, 살아있는 네트워크 자체이며 그래서 연결된 세상에서 가치를 만드는 문법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바로 생명체라는 관점이다. 그래서 네트워크에 대한 이해는 처음에는 머리로, 그다음에는 가슴으로, 그다음에는 몸으로 온다.

머리로만 이해했을 때는 이미 다 안 것 같다. 곧 실행이 될 것 같거나 이미 하고 있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시간이 필요하다. 가슴으로 이해했을 때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온 다음이다. 제대로 실행이 되지는 않지만 이제는 과거의 관점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그런데 몸으로 이해하는 과정이 되면 관점이 달라지는 정도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된다. 네트워크와 내가 분리되지 않는다는 말은, 꿀벌이 군락과 생태계를 이루는 원리와도 같다. 관계를 맺고 연결을 만들고 상호작용하는 그 과정 자체가 목적이 된다. 관계는 손에 잡히는 실체로 드러나며 지극히 구체적인 매개체, 유일한 경험, 배움을 낳는다. 관계와 내가 분리되지 않음을 알게 되는 지점, 그 지점에 새로운 ‘나’가 있다.

그동안 오가닉 미디어, 오가닉 마케팅이라는 제목으로 많은 수업을 했는데 맨 마지막 슬라이드에 항상 써놓았던 문장이 “네트워크는 체득이다”라는 것이었다. 이런 이론적인 정리는 이제 그만 듣고 빨리 직접 해보라고, 네트워크를 체득할 수 있는 경험과 실천이 제일 중요하다고 늘 강조해왔다. 나조차 지금 이 순간도 이 과정을 여전히 배우고 있다.

오가닉 마케팅은 살아있는 생명이 자라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래서 한 사람의 성장 노트이자 네트워크와 하나 되는 체득의 과정이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여기 있고, 저기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가 네트워크 자체가 되는 것이다. 그다음은 멈추기가 어렵다. 단순히 어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일한 것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 연결되고 깨닫고 나아가는 오늘이 쌓여 돌이킬 수 없는 내일의 나를 매일 만나게 된다. 그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돌이킬 수 없는 성장을 했다. 우리는 비즈니스, 가치 전체를 네트워크로 보는 동료를 얻었고 이제 그가 마음껏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돕는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노력하는 역할로 자리를 옮겼다. 내가 성장하는 만큼 네트워크가 성장하고 생명은 반드시 다음 연결을 만든다. 토종벌에서 시작한 프로젝트는 계속되는 콜렉션으로, 지역 공동체와 함께 아이들이 참여하는 그림책으로, 다큐멘터리로, 소비자들과 함께 만드는 밀원지 지도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그러니 오가닉 마케팅에서는 한 사이클이 끝나는 시점이, 멈출 수 없는 과정 즉 새로운 사이클의 연쇄적인 시작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구체적인 단 한 사람이 필요하다. 여정의 구심점이다. 그 한 사람의 강력한 ‘왜 이 일을 하는가’에서 출발해서, 아무 가치도 만들어지지 않는 것 같은 지루하고 포기하고 싶은 외로운 과정을 지나간다. 한사람의 팬이 만들어지고 그렇게 가장 작은 단위의 네트워크가 만들어지면 이제부터 시작이다. 새로운 만남의 과정에서 쏟아지는 인사이트를 꿰매고 퍼즐을 맞추다 보면 어느새 성장해 있는 내가, 관계 안에서 성장해 있는 나 자신이 오가닉 마케팅의 실체이고 증거가 된다.

2021년 4월의 연천

마지막, 스스로에게 던지는 4가지 질문

이 글이 ‘나와 무슨 상관이지?’ 궁금한 분들을 위해 4가지 질문으로 다시 글을 정리해 본다. 내가 어떤 마케팅을 하고 있는지 점검해보는 질문으로 이해해도 좋겠다.

1. 겉과 속이 같은가, 다른가?

보여주고 싶은 나와 실제의 나가 같은지, 다른지에 대한 질문이다. 속으로 다른 생각을 하면서 겉으로 그럴듯하게 포장한 말과 행동을 하면 오래가지 못하고 들통나게 되어 있다. 인간관계가 그렇듯이 마케팅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겉과 속이 같아지려면 ‘왜 이 일을 하는가’에 대한 깊은 고민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스스로 강력한 동기부여, 그러니까 모두가 가다 멈춰도 나는 계속 그 길을 갈 수밖에 없는 강력한 동기는 각자가 찾아낸 “왜(Why)”에 있을 것이다. 가치를 만드는 시작점이다. 생각과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실행을 하고 있는지 함께 생각해 보면 좋겠다.

2. 안과 밖이 있는가, 없는가?

투명성에 대한 질문이다. 안과 밖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는지, 내 조직의 사람들과 나누는 정보가 내가 그어놓은 금 바깥쪽에 존재하는 고객들과 나누는 정보와 같은지, 다른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네트워크에는 안쪽과 바깥쪽이 없다. 네트워크 관점으로 보면 조직도를 가진 회사가 안쪽이고 고객이 있는 시장이 바깥쪽이라고 말할 수 없다. 오직 연결된 관계(링크)만이 존재할 뿐이다. 고객과 파트너들과의 관계가 여기서 결정된다. 모두가 한 방향을 보고 함께 걸어가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왜 이 일을 하는가”가 세워져야 하지만, 그다음 필요한 것은 투명한 정보의 흐름이다. 밀원지 방문부터 모든 만남과 사건, 사실, 생각을 투명하게 기록하고 공개하는 과정이 신뢰가 되고 어느새 옆에 함께 걸어가는 동료가 있음을 발견하는 여정이 되었다.

3. 함께인가, 혼자인가?

그래서 오가닉 마케팅은 함께 걷는 길이다. 절대로 혼자 만들 수 없는 것이 관계이기 때문이다. 가치가 노드에 있지 않고 링크에 있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관계를 만들지 못하면 가치는 없는 것과도 같다. 물론 네트워크에서 관계는 사회관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다만, 이 질문에서는 ‘조직 없는 조직화’ 관점에서 나와 함께 걷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그 사람들이 수단인지 목적인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고자 하는 것이다. 내가 일방향으로 가치를 만들어 시장에 제안한다고 믿는다면 혼자 가는 길이다. 어떤 캠페인을 하든, 무엇을 론칭하든, 어떤 말을 걸든, 서로는 각자의 역할을 온전히 할 수 있도록 돕는 조력자일 뿐이다. ‘함께’ 만든다는 전제에 동의하게 된다면 위의 1번에서 언급한 “왜 이 일을 하는가?”부터 시작하면 된다.

4.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는가, 작아지는가?

마케팅을 단순히 KPI 달성을 위한 이벤트의 하나로 보고 있는지, 살아있는 생명체로 보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노출과 판매, 유입을 위한 실행이라면, 마케터가 광고하고 이벤트를 하면 그래프가 커졌다가 실행이 끝나면 사라진다. 나 혼자 일하고 있고 관계는 만들어지지 않으며 그러므로 자라지 않는다. 반면 생명체는 성장하게 되어 있다. 성장을 멈추면 생명도 멈추는 것이 원리다. 그래서 미디어를 네트워크로 정의하면서 ‘진화하지 않으면 죽는다’라는 표현을 하기도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오늘의 실행이 내일의 실행과 연결되어 있어야 하며, 제대로 실행되었다면 즉 배움이 있었다면 반드시 다음 사이클을 낳게 된다. 그 과정 중에 내가 성장하고 우리 팀이 성장하고, 참여자들이 주도하는 생명체가 성장하는 것, 네트워크의 체득이며 눈으로 보고 만질 수 있는 마케팅의 실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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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공유와 피드백 부탁드리며 글을 인용하실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Apr .15, 2021
Dr. Agnès Yun (윤지영)
Founder & CEO, Organic Media Lab & From(프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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