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왜’를 찾아서 3편: 질문의 힘 [Why] ‘왜’를 찾아서 3편: 질문의 힘](https://i0.wp.com/organicmedialab.com/wp-content/uploads/2023/08/Past-Paradigm.jpg?resize=594%2C476&ssl=1)
<이전 글: [Why] ‘왜’를 찾아서 2편: 내가 찾은 비밀>
우리의 성공지표(Key Performance Index)는 퇴사율이다. 처음부터 의도했던 것은 아니다. 공부 열심히 해서 더 크게 매출에 기여하라고 회사의 가장 뛰어난 인재들을 교육에 보냈는데 그 결과가 퇴사라니 황당한 얘기다. 그런데 이런 일은 반복적으로 일어난다. 비즈니스의 본질적 변화, 가치를 만드는 원리가 본질적으로 진화했음을 깨닫게 되면 선택의 폭은 넓지 않다. 지금은 천동설과 지동설이 공존하는 세상이다. 두 관점을 적절히 조화시킬 수 있는 레시피가 없다. 하나가 진리로 밝혀지면 하나는 거짓이 된다.
비즈니스의 천동설
비즈니스에서 천동설은 근대에서 현대까지 수백 년 간 유지되어왔다. 기업은 가치를 만들고 전달하는 주체이며, 그래서 소비를 창출하고 시장을 이끄는 주체가 되어왔다. 생산을 중심으로 모든 가치사슬이 만들어지고 이에 따라 시장도, 사회도, 그래서 세상도 돌아갔다. 지구를 중심으로 태양이 도는 것처럼 이익을 창출하는 비즈니스를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갔다. 이에 따라 인류의 성장이, 질서가, 문명이 이뤄져왔다. 개인의 삶도 기업이 만드는 가치를 따랐다. 더 멋지다고 말해주는 메시지를 따라서 입었으며 더 건강하다는 메시지를 따라서 먹었으며, 더 편리하다는 메시지를 따라 구매했다.
세상이 변해서 소비자가 생산자도 되는 세상이 왔다고 하지만 천동설에 대한 믿음이 한번에 사라질 수는 없다. 세계관은 존재를 이해하는 관점이자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삶의 기준이다. 그래서 고객의 어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로 시작한 회의도 결론은 어떻게 더 잘 팔 것인가로 끝난다. 가치를 만드는 주체가 기업이라는 관점에 머물러 있으므로 근원으로 내려가면 (고객의 문제가 존재하기 전에) 태초에 이익을 창출해야 하는 기업이 있는 것이다.
프레임은 당위성을 만든다. 이 세계관에서는 ESG도 기업의 이익창출을 위해 택할 수밖에 없는 경영전략이다. 고객에게 전달해야 하는 가치, 제품, 메시지 모두 이익 창출이라는 미션의 틀 안에서 결정된다. 스스로가 깜빡 속을 정도로 포장을 잘해도 근원은 같다. 돈이 있어야 뭐든 할 수 있다. 돈이 있어야 비즈니스도 존속하고 성장하고 일자리도 창출하고 좋은 일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돈을 벌어야 하는 명제는 진리가 된다.
그래서 ‘왜’를 찾는 시간도 당연히 이 세계관의 지배를 받는다. 대화 자체가 자동으로 상대방을 설득하는 과정이 된다. 고객을 설득하고 회사를, 팀원을, 파트너를, 그래서 자기 자신을 설득하는 과정에 언제나 갇혀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인지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요구된다. ‘왜’ 찾기 2편 [내가 찾은 비밀]에서 소개한 건축가처럼 설득도, 전략도, 의도도, 회피도, 선택(selection)도 없이, 있는 그대로, 문제점 서너개를 가장 단순한 문장으로 나열하는 것이 그렇게도 어려운 것이다. 모두에게 일어나는 일이다.
그 전까지는 ‘왜’가, ‘질문’이 고객을 직원으로 만들어 더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 이해한다. 아무리 스스로 아니라고 다짐을 해도 답은 프레임에서 도무지 벗어나지 못한다. 본질적인 ‘왜’도, 어떻게 팬 네트워크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전략으로 알아듣는다. 기업이 가치 생산의 주체이며, 물질적 가치로 환산되는 것만이 결국 가치라는 관점에 갇혀 있으면서, 새로운 관점(아래서 정리할 지동설의 원리)을 겉모습만 차용하려고 할 때 오류는 반복되고 깊어진다.
과거의 가치 패러다임
목표/수단/결과 | 희생된 제물 | |
목표 | 풍요 (Abundance) | 생태계 (Nature) |
가치 | 미래 (Future) | 현재 (Present) |
협업방식 | 위계 (Hierarchy) | 창발 (Creation) |
생산방법 | 대량 (Mass) | 혁신 (Innovation) |
개인의 역할 | 주어진 (Given) | 질문능력 (Questions) |
사회관계 | 지배와 종속 | 협력 (Collaboration) |
생산수단 | 노동 (Labor) | 관계 (Relationship) |
생존수단 | 가면 (Mask) | 투명성 (Transparency) |
질문의 등장
이 세계관에서 어떻게 빠져나갈 것인가? 출구를 찾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출구가 외부에 있지 않고 내 안에 있으므로, 특별한 여행을 시작해야 한다. 어디 관광지로 멀리 쫓기듯 떠나지 말고 내 안으로 돌아와야 한다. 질문의 등장이다. 바쁜 것이 능력인 세상에서, 빨리 공부하고 습득하는 것이 능력인 세상에서, 서성이는 듯 답에서 멀어지는 시간을 견디는, 답답하고 쓸데없어 보이는 과정을 마주하기로 한다.
질문은 이정표다
답을 알아서 유도하는 질문이 아니다. 질문은 여행을 돕는 이정표다. 자신의 방에서 스스로를 마주하고 만지고 알아차리는 여행이다. 어쩌면 그래서 가장 길고 험난하다. 단체관광 같은 정답이 없다. 희소식은, 이미 시작된 여정을 포기하거나 타협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자신만의 ‘왜’를 발견함으로써 답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질문은 산 중턱에서 ‘여기가 바람도 불고 좋습니다’, 갈래 길에서 ‘이쪽이 익숙한 길입니다’, 험한 길에서 ‘다들 이쪽으로 가는데 왜 이탈해야 하나요?’ 의아해할 때 길을 잃지 않도록 돕는다.
오류를 인지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질문에 질문을 거듭하고 가장 단순한 지점, 아무것도 남겨지지 않는 바닥까지 내려가서 ‘왜’를 스스로 찾아낸 다음에야, 세포가 깨어난다. 단순하지만 내 몸이 인지하기 전까지 바라볼 수도, 들리지도, 말할 수도 없던, 어떤 원리에 도달한다. 논리적으로는 아직 정의되지 않지만 분기점에 와있음을 몸이 알게 되는 순간이다. 이전 글에서 물질적 가치(돈)와 존재적 가치의 대립이 부서지고 서로 연결되는 비등점으로 설명한 바로 그 부분이다.
질문은 이탈이다
우리는 그동안 모두 같은 시스템 안에서 세계를 만나고 그 사회의 일원이 되었다. 동일한 교육을 받고 동일한 콘텐츠를 소비하고 동일한 방식으로 일하며 동일한 가치를 만들도록 훈련되어 왔다. 모든 것은 규격화되었으며 상식(common sense)의 지배를 받아왔다. 질서 정연하게 앞만 보고 걸어가도록 의식 체계는 틀 안에서 감금되어 있었다. 그래서 많은 경우 다른 것은 틀린 것이다. 같은 것을 보고 같은 것을 듣고 같은 것을 말하고 같은 것을 추구한다. 기준이 같으므로 경쟁으로 우열을 가리기도 쉽다. 인재의 정의도 쉽다.
내 안에서 숨겨진 ‘왜’가 발견되지 않고 사장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미 스스로 세뇌한 ‘왜’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회사의 일을 원래 내 목표나 천직이었던 것으로 합리화해내는 데 선수다. 대표님 비전이 내 비전이고 미션이라는 믿음이다. 제안서를 만들며 스스로 설득되고 고객의 선택까지 받으면 성취감은 더 커진다. 동료들과 밤을 새우며 고객(팀장, 임원, 사장, 소비자 등 돈을 주고 평가하는 주체)을 설득하기 위해 노력하던 시간들은 열정적이었다. 그런데 남탓하며 종료된 수많은 프로젝트의 이유는 어디에 있었을까?
나도 같은 과정을 거쳤다. 왜 지금 여기서 이 일이어야 하는지 물어볼 생각은 없었다. 본질적인 질문에 다다르기 위한 시간의 부재, 그래서 존재의 부재, 내 안에 감추어진 비밀이 있을 리가 없었다. (고슴도치의 죽음에서 언급했었던) 일생일대의 계기가 찾아오기 전까지 나 또한 스스로 잘 설득해 왔고 그래서 충분히 멋졌다.
질문은 멈춤이다
질문과 답이 바닥까지 이어져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 때, 궁극에 한 지점에 도달한다. 경쟁 기차 안에서 더 빨리 가려고 뛰던 사람도, 기차에서 이미 내려서 생각을 시작한 사람도 마찬가지다. 난이도는 다르지만, 질문의 질문은 통과점을 만들고 결국 한 지점에 도달하게 되어있다. 질문은 시간을 멈추는 힘이다. 2편에서 소개한 건축가의 사례처럼, 내 안에 감추어진, 나만의 비밀을 내가 만나는 순간이다. 시간이 잠시 멈춰 나를 기다려주는 찰나를 경험하게 된다.
누가 밖에서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스스로의 비밀과 만나는 그 지점, 누가 밖에서 알려준 것이 아니라, 언제나 내 안에 있었다는 사실을 문득 발견하게 되는 그 지점, 질문이 존재를 만나는 그 지점, 질문이 존재가 되고 존재가 문제를 정의하게 되는 그 지점, 이 화학작용이 나를 깨우는 마법의 순간이다. 틀을 깨고 나올 수 있는 힘을 가진다. 단순히 한 시대에서 다른 시대로 넘어가는 관문이 아니라, 가치를 만드는 원리가 ‘나’로부터 시작된다는 체험이다. 여기가 출구다.
비즈니스의 지동설
여기는 풍요의 세상이다. 생산이 가치를 만드는 세상이 아니라 그 반대다. 생산은 무한해졌다. 모든 것이 넘쳐나는 풍요와 잉여의 세상에서, 누구나 생산의 주체가 되므로 오히려 무엇이 가치인지 가려내는 능력, 무엇이 문제인지 정의하는 능력, 그래서 서로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절약하도록 도와주는 능력이 가치를 만드는 세상이 되었다.
풍요의 세상에서는 ‘연결’이 가치를 만든다. 연결의 결과는 네트워크다. 이익 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비즈니스가 중심이 되어온 천동설의 시대가 가고, 가치가 무엇인지 찾아내고, 그 가치를 만들기 위해 어떤 네트워크를 만들고 있는지가 중심이 되는, 정답보다 문제가 중심이 되는, ‘지속가능함’을 만드는 원리가 세상의 중심이 되는, 기업은 이를 돕는 매개자가 되는, 그런 세상이 온 것이다. 비즈니스의 천동설이, 비즈니스의 지동설로 이미 전환된 시대에 우리가 벌써 와있다.
문제 해결 방법이 달라졌다는 증거는 도처에 있다. 기후온난화가 좋은 사례다. 전 인류적으로 당면한 이 문제는 물질적 풍요를 이루는 과정이 낳은 결과다. 생산의 관점에서 보면 해결책은 절약, 희생, 규제, 억제다. 더 이상 생산하지 않거나 더 먹지 않거나, 심지어 인구의 숫자를 줄이는 것이 해법이 된다. 하지만 생산 중심의 선형적 사고는 과거의 방식, 천동설의 관점이다. ‘오가닉 에너지 생태계’에서 정리한 것처럼 생산이 아니라, ‘풍요’의 관점, 비즈니스 주체가 아니라 모두의 참여가 연결을 통해 가치를 만드는 관점에서만 문제 해결이 가능할 것이다(1).
우리는 이미 새로운 질서 속에 있다. 블록체인은 모두의 참여가 가치를 만들지만 선의가 아니라 각자의 이익이 전체를 위한 이익이 되는 생태계다. 생산의 주체가 주인이라는 관점으로 이해할 수 없는, 권력과 책임과 소유가 분산된 생태계가 자라고 있다. 챗GPT는 풍요로부터 답을 구한다. 개발자가 명령하고 생산자가 짜놓은 규칙대로 움직이는 소프트웨어 1.0의 시대가 가고, 우리가 남긴 데이터로부터 배우는 소프트웨어 2.0 시대, 우리 모두의 참여가 만드는 세상이다. 선형적 사고로는 알 수 없는 일들이 기존의 질서를 압도하는 중이다.
여기는 전체가 유기체로 얽혀있는 세상, 진화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세상, 하나의 생태계, 마치 한 몸처럼, 한 방향을 보는 협업이 조직을 만드는 세상, 역할이 다를 뿐 누가 누구를 지배할 수 없는 세상, 그래서 각자의 ‘왜’가 없이 합류할 수도 없는 세상, 모든 것이 모든 것과 소통할 수 있는 투명한 세상, 투명하게 통신하지 못하면 피가 흐를 수 없는, 살아있는 생태계의 멤버로서 각자의 행동이 모두의 운명을 좌우하는 세상인 것이다.
새로운 가치 패러다임
목표/수단/결과 | 버려야 할 것들 | |
목표 | 의식의 확장 (Survival) | 전통적 세계관 (Confined) |
가치 | 성장 (Learning) | 관성 (Inertia) |
협업방식 | 유기적 (Self-organizing) | 위계구조 (Hierarchy) |
생산방법 | 연속적 혁신 (Continuous Innovation) | 선형적 사고 (Linear) |
개인의 역할 | 선택 (Chosen) | 수동적 (Passive) |
사회관계 | 수평적 (Collegial) | 지배 (Command/Control) |
생산수단 | 데이터/알고리즘 | 낭비 (Waste) |
생존수단 | 투명성 (Transparency) | 가면 (Mask) |
그렇다. 여기서는 이익을 창출하는 비즈니스 주체를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가지 않는다. 서로를 위한 (서로 돕는) 가치를 창출하는 개인, 조직으로 이뤄진 네트워크의 원리로 세상이 돌아간다. 생명의 원리가 지배하는, 예컨대 비즈니스 지동설의 세상이다.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도는 것처럼, 생명의 가치와 원리를 기반으로 개인, 조직, 기업이 협업하는 세상, 그래서 존재적 가치가 먼저 있고 돈이 있는 세상이다.
관계에 존재가 있으므로 내가 어떤 관계를 만들고 있는가가 가치를 결정하는 세상이다. 살아있도록 서로를 깨우는 힘, 일으키는 힘, 내가 아닌 다른 대상을 향해 있을 때 내가 반짝이는, 그 대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의 온 시간을 사용하는데 결국 그 과정이 내가 존재할 수 있는 힘이 되는, 그래서 관계로부터 가치가 만들어지는 존재적 가치가 지배하는 세상이다.
의식의 확장
내가 발견한 ‘왜’는 이 세계관을 여는 문이다. ‘왜’를 찾았다고 갑자기 세계관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나’가 없으면, ‘왜’를 가진 나가 없으면 여기서는 지속가능한 가치를 만들 수가 없다. 비즈니스 천동설에서는 나 없이도 세상이 돌아가고 대중이라는 그룹이 나의 정체성을 정의했다. 그러나 생명의 원리로 동작하는 세계관에서는 나약하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왜’가 중심이다. 물질적 가치와 존재적 가치가 연결된 구조에서 나의 개입이, 방향을 만들고 조직화를 하는 힘을 만들고 ‘지속가능한’ 힘을 서로에게 더한다.
앎이란 의식의 확장인 동시에 편견이다. 의식의 확장은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다고 믿어온 것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촉각으로, 세포까지 알게 될 때 비로소 일어난다. 이 확장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어서, 멈추면 갇히고 지속되면 편견으로 끝난다. 흥분되는 변혁의 시기다. 눈과 귀를 열어두기를 멈추면, 정체된 거기가 여행의 마지막 지점이다.
천동설의 틀걸이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것은 시스템이 아니다. 오랜 시간 교육을 통해, 관계를 통해, 상식을 통해 내 안에 심겨온 믿음이다. 동료가 막거나 사장님이 막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알고 있던 지식이 나를 막고 있으며, 우리 사회가 알고 있던 지식은 이미 편견이 되었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네트워크의 원리, 한 방향을 보는 사람들과의 만남, 그 과정에서 가치를 만드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존엄함을 배우는 과정이며, 다른 사람들이 존엄한 존재임을, 그 관계에 각자의 생명이 연결된 형태로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과정이다.
과거 천동설과 지동설은 무려 150년간 공존했다.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공전하고 있다고 어떻게 갑자기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것이 진리로 드러나면 무엇을 해야 할까? 먼저 질문을 통해 자신의 ‘왜’를 몸으로 발견해야 한다. 그리고 가치를 만드는 (네트워크의) 원리를 몸으로 습득해야 한다. 그래서 첫째 ‘왜’와, 둘째 생명의 원리와, 셋째 나의 체험이 뗄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음을 몸으로 알게 되어야 한다. 그 다음에 행동은 저절로 바뀔 수밖에 없다. 생명의 원리가 지식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자체가 되었기 때문이다.
<각주>
- (1)연결이 지배하는 세상의 문제는 네트워크의 속성에 기반한다. 이에 따라 발생하는 비선형적/지수함수적인 이슈와 원리는 이 글에서는 자세히 다루지 않는다. 더 깊이있게 이해하고 싶은 분들을 위해 ‘지수함수의 저주‘를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 (2)전기차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자동차의 네트워크’를 만드는 테슬라는 기존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동작하는 조직이다. 이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분들은 ‘소프트웨어 중심 사고란 무엇인가?’를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추천 글>
- 윤지영, IoT는 왜 유기적 협업인가? , 오가닉미디어랩, 2015.
- 노상규, 테슬라 미션의 경제학, 오가닉미디어랩, 2023.
- 윤지영, “네트워크의 이중성,” 오가닉 미디어, 2014.
* 많은 공유와 피드백 부탁드리고 글을 인용하실 때에는 반드시 다음과 같이 (링크를 포함한) 출처를 밝혀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 인용 예시: 윤지영, [Why] ‘왜’를 찾아서 3편: 질문의 힘, 오가닉 미디어랩, 2023, https://organicmedialab.com/2023/08/25/why-power-of-questions/
Aug 25, 2023
Dr. Agnès Yun (윤지영)
Founder & CEO, Organic Media Lab
email: yun@organicmedialab.com
X (Twitter): @agnesyun
Linkedin: agnesy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