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왜’를 찾아서 3편: 질문의 힘

[Why] ‘왜’를 찾아서 3편: 질문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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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성공지표(Key Performance Index)는 퇴사율이다. 처음부터 의도했던 것은 아니다. 공부 열심히 해서 더 크게 매출에 기여하라고 회사의 가장 뛰어난 인재들을 교육에 보냈는데 그 결과가 퇴사라니 황당한 얘기다. 그런데 이런 일은 반복적으로 일어난다. 비즈니스의 본질적 변화, 가치를 만드는 원리가 본질적으로 진화했음을 깨닫게 되면 선택의 폭은 넓지 않다. 지금은 천동설과 지동설이 공존하는 세상이다. 두 관점을 적절히 조화시킬 수 있는 레시피가 없다. 하나가 진리로 밝혀지면 하나는 거짓이 된다.

비즈니스의 천동설

비즈니스에서 천동설은 근대에서 현대까지 수백 년 간 유지되어왔다. 기업은 가치를 만들고 전달하는 주체이며, 그래서 소비를 창출하고 시장을 이끄는 주체가 되어왔다. 생산을 중심으로 모든 가치사슬이 만들어지고 이에 따라 시장도, 사회도, 그래서 세상도 돌아갔다. 지구를 중심으로 태양이 도는 것처럼 이익을 창출하는 비즈니스를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갔다. 이에 따라 인류의 성장이, 질서가, 문명이 이뤄져왔다. 개인의 삶도 기업이 만드는 가치를 따랐다. 더 멋지다고 말해주는 메시지를 따라서 입었으며 더 건강하다는 메시지를 따라서 먹었으며, 더 편리하다는 메시지를 따라 구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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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닉 에너지] 풍요에 답이 있다

[오가닉 에너지] 풍요에 답이 있다

<이전 글: [오가닉 에너지]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자세: 무엇이 문제인가?>

지난 7월 제인구달 박사의 강연을 듣기 위해 이화여대 대강당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티케팅이 1분 컷이었을 정도로 망가진 지구와 환경에 대한 관심은 뜨거웠다. 그녀는 ‘희망’의 메시지를 던졌다. 희망이란 막연한 생각이나 바람이 아니라 ‘실천’이며 매일 작게라도 행동하고 주변을 전염시키는 삶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90세를 맞이한 그녀는 온 삶을 통해 이 메시지를 전해왔다. 남은 삶도 파괴된 자연의 복원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말에 감동과 희망이 일렁였다.

보통 사람이라면 할 수 없는 헌신과 희생이며 사랑의 실천일 것이다. 우리는 그녀의 사랑을 배우고 싶고 실천하고 싶다. 다만 오늘은 이 감동의 메시지와 별개로, 함께 하는 작은 행동이 주변만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기하급수적인 결과를 현실적으로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문제의 핵심을 정확히 이해하고 틀 밖에서 답을 찾아와야 한다. 제인구달 박사의 사랑의 메시지는 가슴에 품되 실천은 더 냉정하게 하자. 각자의 삶에서 뭔가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위로가 아니라, 진정으로 기후변화를 종식시키는 것이 목적이라면 이 글을 계속 읽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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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왜’를 찾아서 2편: 내가 찾은 비밀

[Why] ‘왜’를 찾아서 2편: 내가 찾은 비밀

<이전 글: [WHY] ‘왜’를 찾아서 1편: 9시간의 사투 >

*스포일러 주의. [‘왜’를 찾아서 1편: 9시간의 사투]에서 이어집니다. ‘8시 55분’까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1편을 꼭 먼저 읽고 오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쉼 없이 달려온 지 정확히 9시간이 경과된 그 순간, 세포가 쭈뼛하게 서기 시작했다. 이제 건축가가 발견한 ‘왜’를 공개하면서 ‘왜’란 도대체 무엇인지 하나씩 정리할 것이다. ‘왜’를 발견하는 여정은 3 단계로 이뤄져 있다. 첫째, ‘왜’를 정의하기 위해 구체적인 문제점(pain points)을 나열하는 단계가 요구된다. ‘왜’가 딛고 설 토양이다. 낱낱이 해부해서 더 발라낼 것이 없는 단계까지 내려가서 뼈만 찾아온다. 둘째, 주인공인 ‘왜’를 한 문장으로 찾아온다. 물은 여기서 끓는다. 셋째, 이 ‘왜’를 뿌리로 나(내 일)의 ‘존재이유’가 정의된다. 어디로 길을 떠날지 나침반을 완성한다. 세 단계는 두리뭉실한 컨셉을 넘어서서 단단하게 손에 잡히는 실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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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직업의 종말 (End of Jobs)

[Why] 직업의 종말 (End of Jobs)

<이전 글: [Why] 돈의 작용 반작용 (Action and Reaction of Money)>

“고모는 직업이 뭐야?” 아직까지 답을 하지 못했다. 직업으로 명명한다면, 컨설턴트, 기획자, 대기업 임원, 스타트업 대표, 강사, 저자(작가), 액셀러레이터, 회사원 등 지금까지 지나온 많은 이름표가 생각난다. 그런데 이런 것들로 답을 해버린다면 거짓말이다. 직업 카탈로그의 그 어떤 것도 나를 정의하지 못한다. 수많은 실패와 만남과 배움과 산을 넘는 경험의 여정에서 나는 아직도 성장 중에 있다. 다가오는 시대에는 각자의 성장의 기록이 직업의 정의를 대신하게 되리라 믿는다.

이 글은 답을 대신해 조카에게 보내는 편지다. “요즘 의대가려고 ‘SKY’에 가고도 자퇴를 한다”라며 혼란스러워하는 그녀에게 전하는 사랑의 고백이다.

왜 직업인가?

이전 세대는 평생직장을 위해 삶을 바쳤고 지금 세대는 매일 저녁 “조용한 퇴사(Quiet Quitting)”를 하고 직장 밖에서 삶을 찾는다. 지금은 개인에게도, 조직에게도 혼돈의 시기다. 패러다임의 중첩과 대전환이 일어나고 있다. 개인은 일을 통해 성장하고 싶지만 삶의 질이 황폐해지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다. 조직 밖의 삶이 더 중요한 개인은 도망가기 바쁘고, 회사는 열정페이 대신 이들을 붙잡을 새로운 조직문화를 찾느라 바쁘다. 이런 와중에 챗 GPT 같은 AI까지 가세해서 우리의 경쟁력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직업은 사회적 산물이다. 그 종말은 AI가 가져올 것이 아니다. 직업의 종말은 이미 와있다.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직업인으로 살아가는 동안 한 개인의 삶도, 그래서 우리가 만드는 사회도 결정된다. 성장과 파괴, 풍요와 결핍이 공존하는 지금은, 극단적인 비등의 구간을 지나고 있다. 어느 한 쪽이 다른 한쪽을 압도하는 시기를 곧 맞이하게 될 것이다. 직업은 이 현실에 대한 증거이자, 이 드라마를 이끌어온 미디어다. 그래서 직업의 종말은 새로운 출구를 갖고 있다.

지금부터 직업이 사회적 종말에 이른 여정을 함께 살펴볼 것이다. 개인과 사회를 연결하는 매개체로서 직업에 대한 본질적인 이해를 통해, 질문에 도달하고자 한다. 이 글은 온 삶에 걸쳐 우리를 일터로 이끌어온 나침반을 향해 던지는 문제의 제기다. 무엇이 될 것인가, 꿈을 꾸기 시작한 때부터 직업의 숙달된 수행까지, 초등학교부터 정년퇴직까지 최소 50년, 앞으로는 수명도 길어졌으니 60년, 70년 동안 우리는 어떻게 직업을 만나고 어떻게 성장했으며(할 것이며) 그 결과 무엇이 되었는지 (될 것인지) 되짚어 보는 시간을 가진다. 직업을 우리 존재로부터 분리해 내는 시도를 통해, 우리 각자가 던져야 할 본질적인 질문에 다시 서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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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돈의 작용 반작용 (Action and Reaction of Money)

[Why] 돈의 작용 반작용 (Action and Reaction of Money)

<이전 글: [Why] 어느 강아지의 발견>

우리에게 돈이란 무엇인가? 앞에서 다룬 존재적 빈곤의 실체를 알아보기 위해 피해 갈 수 없는 것이 돈이다. 돈은 살아있다. 나와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심지어 그 관계 속에서 성장한다. 인류의 사회 관계는 돈을 매개로 형성되어 왔으며 그 과정에서 돈은 이 사회관계의 주인이자 질서가 되었다. 그래서 우리의 첫 번째 존재적 질문임과 동시에, 답을 찾아줄 매개체가 돈이다.

돈이 우리 삶을 지배해왔다는 사실은, 각자의 돈에 대한 인식의 문제를 벗어난다. 돈은 우리와 항상 같이 있지만(대출금도 돈이다), 눈으로 보고 셀 수 있지만, 돈의 작용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돈은 나와 사회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작동하고, 이 작동이 다시 우리의 관계를 정의한다.

지금부터 돈의 신뢰작용, 중력작용, 지배작용을 차례대로 살펴볼 것이다. 이 과정에서 돈의 객관성, 등가성, 보편성을 돈의 본질적인 속성으로 정의하고, 돈의 작용이 만드는 반작용을 결론에서 맺을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의 존재로부터 돈을 분리해 내고, 돈의 실체를 밟고 서서, 여러분이 시작하게 될 새로운 질문을 목격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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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어느 강아지의 발견 (The Discovery of a Puppy)

<이전 글: [Why] 가면무도회>

초등학교 때 일이다. 수업 시간은 언제나 내게 길고 힘든 고난의 시간이었다. 재미도 없었고 집중도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자주 자리에서 일어나 맨 뒤로 휴지를 버리러 갔다. 숨소리도 나지 않게 조용하고 엄격한 시간, 오직 선생님의 목소리만 공간을 가득 메우는 시간, 공기도 흐르지 않을 것 같은 정적의 공간에서 나는 벌떡 일어나 당당하게 뒤로 갔다.

모두 앞을 보고 있을 때 뒤로 걸어가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참았던 숨을 갑자기 쉴 수 있었다. 약간의 불안감과 두려움, 그러나 말할 수 없는 해방감을 안고 뒤로 향했다. 하면 안 되는 행동이라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지만 초등학교 3학년, 휴지는 휴지통에 버리라는 가르침을 실천 중이니까 당당하게 걸어갔다. 휴지를 버리고 턴을 돌아 자리로 오는 시간이 얼마나 짧고 아쉬웠던지 지금도 그 느낌을 세포가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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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고슴도치의 죽음 (The Death of a Hedgehog)

[Why] 고슴도치의 죽음 (The Death of a Hedgehog)

<이전 글: [Why] 프롤로그: ‘Why’인가?>

죽음의 문턱에 이르러서야 알았다. 그때가 2017년 4월. 두 번째 책 오가닉 마케팅이 출간되고 겨우 한 달을 넘긴 때였다. 그간의 노력은 나를 배반하지 않고 정점을 찍기 시작했다. 나는 가장 즐겁게, 열정을 다해 할 수 있는 일에 온전히 몰입되어 있었다. 일을 하면 할수록 나는 성장했으며 내가 하는 일을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었다. 브랜드가 만들어지고 있었고 기업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고슴도치 전략

짐콜린스가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라는 책에서 소개한 ‘고슴도치 전략’의 성공이었다. 원리는 단순하다. 첫째, 내가 열정을 가지고 가장 기쁘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는다. 둘째, 그것으로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는지 자문한다. ‘아니오’가 나오면 ‘예’가 나올 때까지 처음 답을 수정한다. 셋째, 그것으로 돈을 벌 수 있는지 자문한다. 아니라면 다시 처음 답을 수정한다. 세 꼭지가 선순환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다음은 기하급수적인 성장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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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가면무도회 (Masquerade)

[Why] 가면무도회 (Masquerade)

<이전 글: [Why] 고슴도치의 죽음>

내 별명은 진돗개다. 한번 물면 놓지 않는단다. 워크숍에서 내 역할은 질문자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진정한 답을 본인이 찾아낼 수 있을 때까지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잇는다. 누군가는 살을 다 발라내고 생선뼈만 남는 과정이었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이 정도면 충분히 나온 것 같다, 너무 좋은 시간이었다’며 황급히 마무리를 시도하기도 한다. 무의식적으로 도망갈 문을 찾는다. 진심이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99도에서는 물이 끓지 않는다.

대부분은 문제를 직면하는 대신 질문자인 나를 설득하기 위한 답을 한다. 스스로도 그것이 답이라고 믿고 있다. 그 논리적인 답들이 스스로도 속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문고리를 찾으며 피하고 싶은 고통의 시간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찾아가는 것이 ‘Why’다. 질문이 이어지다 보면 한 단계씩 더 깊이 내려간다. 답을 찾은 것 같지만 그 밑에는 한 겹이 더 있다. 그 한 겹을 더 벗겨내고 한차례 더 답에 가까워진 것 같지만 끝이 아니다. 계속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본래 던져야 할 질문, 발견해야 할 문제에 다다른다. 그렇게 마치 양파 껍질을 벗기듯이 가면을 한 겹씩 스스로 벗으면서 진정한 ‘왜’를 스스로 찾아내게 된다.

보통은 우리 회사의 존재 이유, 나의 일, 해결해야 할 문제 등에서 시작하는데, 바로 이런 과정 때문에 어김없이 가면이라는 단어를 마주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심리 치료 시간도 아닌데 얼마나 당황스러운가. 내가 가면을 쓰고 있다니 내내 불편하고 싫을 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문장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다음에는 가면이 왜 내 얘기라는 것인지 어리둥절하고, 그다음은 기분이 나빠진다. 스스로 ‘왜’를 명확하게 찾게 되는 순간까지. 

보통 가면은 나의 본래 모습과 의도를 상대방에게 숨기기 위해 필요하다. 나를 보호하기 위해 쓴다. 그런데 우리가 집중하고자 하는 것은 타인을 향해 있는 가면이 아니라, 내가 바라보는 가면이다. 내가 거울처럼 바라보고 나 자신으로 인식하는 가면이다. 그래서 알아차리기가 어렵다. 하지만 내가 안다고 믿어온 것, 믿어의심치 않았던 것들을 직면하고 내려놓을 수 있는 힘이 있어야 앞으로 갈 수 있다. 그 첫번째가 나 자신에 대한 인식, 내가 세상을, 관계를, 나 자신을 올바로 볼 수 있도록 막고 있는 내 가면이다. 이 글은 그 가면에 대한 인식을 돕기 위해 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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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저널 사건으로 본 전통 저널리즘의 종말 (The end of old journalism through the lens of a WSJ-Elon Musk incident)

월스트리트저널 사건으로 본 전통 저널리즘의 종말 (The end of old journalism through the lens of a WSJ-Elon Musk incident)

주변에 기자, 미디어 관계자가 많다. 오가닉미디어 책을 내기 전부터 맺어온 인연이다. 한동안 토마토나 블루베리 파이, 꿀벌에 대한 진심으로 침묵해온 주제인데 이번만은 안되겠다는 마음으로 오래간만에 글을 쓴다. 어제 벌어진 월스트리트 저널 사건은 전통 (매체) 저널리즘의 종말을 알리는 상징이자 증거로 기록되기에 충분하다.

연결이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최소 1명 이상의 팔로어를 가진 우리는 모두가 기자이고 미디어다. 그러니 모든 기사를 실어 나를 때 정확한 정보인지 사전 확인부터 할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 일반인들도 이런 의무가 있는데 전문기자와 언론사는 어떨까? 팩트 체크는 당연하고 독자와 시청자들의 판단을 돕기 위한 정확한 근거 제시, 객관적인 분석과 보도는 당연한 의무다. 그렇지 않으면 존재할 가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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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1일(목)Tasting Class] 컨텍스트를 디자인하다 (How to design context?)

12월의 주제는 컨텍스트입니다. 지난 달 [네트워크를 그리다] 수업에서는 MVN(Minimum Viable Network)를 중심으로 네트워크의 구조와 작동원리를 알아봤습니다. 연결된 세상에서 모든 비즈니스 모델을 네트워크로 해석하고 어떻게 실전에 적용할 것인지, 제품-조직-고객의 관계를 어떻게 네트워크로 만들 것인지 방법론과 현장 사례를 논의했습니다.

그런데 이 네트워크를 만드는 주체는 누구인가요? 네트워크를 설계만 해놓으면 저절로 네트워크가 생기고 자라날까요? 컨텍스트는 바로 이 네트워크를 유기체로 만드는 모든 것입니다. 연결된 세상에서는 멋진 플랫폼을 설계한다고 저절로 네트워크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반대로 사소하고 지루한 연결 하나하나가 쌓여 네트워크를 만듭니다. 이 사소한 연결을 만드는 것이 바로 컨텍스트입니다.

오가닉 마케팅이 고객의 경험에서 출발한다면, 컨텍스트는 경험을 만드는 주인공이다. 컨텍스트가 끊어지면 경험도 끊어진다. 경험이 끊어지면 제품은, 서비스는, 콘텐츠는 죽는다. 어떻게 끊김이 없는 컨텍스트를 만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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