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짓는학교] 숲속 야외주방이 있는 풍경

[짓는학교] 숲속 야외주방이 있는 풍경

고작 밀가루, 세상 흔한 그게 뭐라고

소리는 요즘 빵을 굽는다. 사랑을 가득히 담아서.

3년 전 친구 손에 이끌려 방문하게 된 아름다운 밀밭의 농부님을 만난 것이 시작이었을까, 아니면 빵 만드는 외과의사를 만난 것이 처음이었을까? 경북 의성의 농부님은 자연에 가장 가깝게 피땀으로 키운 밀을 멧돌로 제분해서 신선한 밀가루를 집으로 보내준다. 이 거친 통밀가루가 물과 소금, 이스트를 만나는 것만으로 풍미와 부드러움까지 충분한 빵이 된다.

밤새 발효된 반죽을 꺼내 쿰쿰 킁킁 향을 맡고, 내가 빌려준 오래된 주물 냄비에 소중히 옮겨 담아 오븐에 넣는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 드디어 빵 굽는 냄새가 집 안에 가득해지면, 나는 신이 나서 강아지처럼 거실로 뛰어온다. 오븐을 열고 황금색으로 봉긋하고 바삭하게 구워진 빵의 자태를 조심스럽게 꺼내는 의식을 치른다. “아, 빵 너무 잘 나왔어! 또 성공이잖아!” 나는 호들갑을 떨고, “뭐, 괜찮게 된 거 같네,” 자신에게 늘 엄격한 그도 이번만큼은 뿌듯함을 숨기지 않는다.

속살은 또 얼마나 부드러운지, 잘라보기도 전에 빵 냄새만큼이나 유혹적인 설렘이 집 안을 가득 채운다. 매일 그렇게 태어나는 이 빵들은 내가 프랑스에서 십 년도 넘게 먹어본 그 어떤 빵보다 맛있다. 나는 박수를 치며 향이 진한 올리브 오일에 찍어 한 입 떼어 먹는다. 바사삭 소리를 내며 빵과 하나가 된 나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그는 뿌듯하다. 그 흔한 빵 한 조각이 주는 충만함이라니.

밤새 유튜브에서 빵 굽는 레시피를 공부하고 실험하고, 자칭 실패해도 무조건 맛있는 소리의 빵은 세상에 하나뿐인 빵이다. 그 존재가 등장하면서 우리의 일상은 완전히 바뀌었다. 세상 흔한 것이 빵이고 밀가루인데, 그 빵이 밤새 발효되고 구워지는 동안 도대체 어떤 마법이 일어나는 것일까? 재미로 한두 번 구워봐도 될 텐데, 왜 빵을 굽는 작은 기쁨과 감사가 매일 더해져 좀 더 큰 설렘을 만들고, 부엌의 풍경을 바꾸고, 일상의 관계를 바꾸고, 어떤 부푼 꿈을 더 구체적으로 꾸게 한 것일까? 그 흔한 밀가루 덩어리가 씨앗이 되어 정말 이런 거대한 변화를 만드는 매개체가 될 수 있냐는 말이다.

이 남자의 낭만을 꺼내는 방법

나는 입력(input)과 출력(output)이 명확하게 돌아가는 컴퓨터를 닮은 그의 뇌에 반해서 결혼했고, 지금도 열렬히 사랑하고 있다. 그런 이 남자가 빵을 굽게 된 데에는 사연이 있다. 매일 테슬라와 비트코인을 공부하고 강의하고 책을 쓰는 일에 몰두해 있던 그에게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냐고,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할 만하다.

우리가 처음 달팽이 텃밭을 가게 된 것은 불과 2년 전이다. “모든 생명이 아름답게 공존하는 삶”을 배우는 커뮤니티 ‘댄스위드비’에서 소나무, 블루비, 산소리라 불리는 언니들을 처음 만났다. 서울에서 직업을 가지고 바쁜 생활을 하던 이들은 13년 전 단양으로 귀농했다. 핀셋으로 벌레를 잡아가며 블루베리 나무를 키우고, 땅과 사람과 모든 생명에 이로운 농사를 짓는다. 오직 자연으로 키운 들깨, 고사리, 마늘, 감자, 색도 맛도 품종도 다채로운 토마토가 풀과 함께 자란다. 씨를 틔우고 열매를 맺고 죽고 다시 태어나는 순환을 산다. 블루비가 사랑으로 키우는 세상 행복한 벌들도, 보석 디자이너였던 산소리가 악세서리 대신 땅에 키우는 주얼리 가든의 허브와 꽃도 모두 하나의 풍경이다.

나는 여기서 작년 출간한 책의 대부분을 썼다. 첫 방문 때는 해발 500고지를 굽이굽이 초행길을 올라가, 도대체 여기 무슨 집이 있다는 말인가 의아했다. 그러나 그 길 마지막에 끝내 동화처럼 나타나는 첩첩산중 깊이 파묻힌 작고 아늑한 분지, 그 시작을 알리는 마을 초입의 거대한 소나무, 언니들의 환대에 첫 마음을 빼앗겼을 것이다. 정확한 이유는 설명할 수 없었지만, 내 몸은 여기 꼭 다시 오고 싶다고, 오겠노라고 내게 말하고 있었다.

그후로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면 소리와 함께 달려갔다. 농사일로, 마을 일로, 각종 프로젝트로 바쁜 언니들은 그 산골짜기 숲속을 세상 가장 생명력이 넘치는 곳으로 만들어놓고 언제나 우리를 환대해주었다. 거기서 언니들이 애지중지 자식처럼 키운 식재료로 나는 화려한 샐러드를 만들고, 미슐랭 3스타가 부럽지 않은 식탁을 함께 나누었다. 대부분의 시간을 식사를 준비하는 데 쓰는 데도 글은 터졌다. 올라올 때가 되면 또 한 꼭지가 여지없이 산을 넘고 있었다.

그렇게 함께 오가던 소리도 처음에는 그곳을 산책하는 것이 좋았을 것이다. 그렇게 좋아하는 나를 보며 흐뭇했을 것이다. 그렇게 언니들과 넘치게 나누는 무용담과 사는 이야기가 식탁 위에 채워지고, 어떤 삶을 몸으로 보았을 것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했던 삶, 귀농이 아니라 온몸으로 살고 배우고 나누는 삶, 치열하지만 사랑이 넘치는 삶, 고달프지만 기꺼이 가는 삶을 보았을 것이다. 나는 이곳의 이름을 사랑을 채우고 또 줄 수 있는 ‘사랑의 베이스캠프’라 이름 지었다. 그리고 그의 말처럼, 그도 끝내 사랑에 빠졌을 것이다. 가을과 겨울, 거실을 따뜻하고 부유한 산장으로 바꿔주는 난로 앞은 소리의 지정석이다. 거기 앉아 이야기도 듣고 불도 지피는데, 난로를 책임지는 블루비는 오직 소리에게만 장작으로 불을 피우는 역할을 나누어 주었다.

그렇게 4계절이 두 번 지나고, 2박 3일, 3박 4일로 다녀가는 곳이 아니라 아예 이사를 온다면 어떨까, 꿈을 꾸게 되었다. 우리의 일은 어디서든 할 수 있다. 워크숍도 열 수 있고 프로그램도 하면 된다. 삶을 여기서 이어간다면 어떤 모습일까, 상상하고 꿈꾸고, 설마, 진짜, 혹시, 아무래도, 그럼에도, 하지만, 결국, 그렇게 서서히 우리 몸으로 새로운 삶의 방식을 실험해보기로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사랑의 베이스캠프에서, 이미 언니들이 일궈놓은 이 물길을 따라 함께 살아보자. 초연결 시대에 가장 힙하게.

‘한 사람의 변화’를 돕는다는 우리 일과 삶의 ‘왜’를 따라 온몸으로 사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 이 격변기에 몸을 실을 파도는 어디 있는지 답은 벌써 나와 있었다. 우리는 서로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 바로 다가오는 파도를 먼저 느끼는 것이다. 우스갯소리로 5년만 먼저 알면 더 좋은데, 10년쯤 먼저 실천하면 세상과 박자가 어긋나는 부작용이 있다. 하지만 이번엔 좀 다르다. 몸으로 살지 않으면 안 되는 파도가 온 것이다. 워크숍을 하고 강의하고 글을 쓰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몸으로 ‘사는’ 것, 그러니까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이 일이 되는 것이다.

AI가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는 시대에 돈으로 값을 매길 수 없는 노동, 오감을 열어 존재를 배우는 삶, 몸으로, 그래서 사랑과 능숙하게 하나가 되는 삶, 매일 변화하는 자연의 순환과 하나가 되는 삶, 그것을 나눌 수 있는 기쁨. 이것을 누리며 사는 것이 우리가 원하는 삶이라는 것을 우리도 모르는 새에 우리 몸이 먼저 알게 되었다.

그가 빵을 굽는 것은 그 실천이다. “단양에 가서 살게 되면 넌 음식을 하면 되는데, 난 어떤 쓸모가 있을까?” 거기서도 서울청계산 밑의 아파트에서 하던 일을 이어갈 수 있겠지만, 말금 마을에서, 그 땅에서 어떤 존재로 살아갈 수 있을까에 대한 가장 현실적인 질문이기도 했다. 그는 금세 답을 찾아냈다. “빵을 만들어야겠어. 내가 잘할 수도 있고 재밌기도 할 것 같아. 그리고 너 좋아하는 디저트, 끊기 어려운데 그냥 내가 건강한 디저트를 만들어줄게.”

코딩을 공부하고 테슬라를 공부할 때처럼 그는 이제 제빵 관련 유튜브를 보면서 일어나고 보면서 잠든다. 그러기를 여러 날 반복하더니 어느 날부터 집에 빵 굽는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제빵기로 반죽하고 굽는 냄새와는 또 차원이 달라졌다. 제일 큰 수혜자는 나다. 나를 위해 구워주는 빵을 매일 먹어서만은 아니다. 공부를 하던 그가 문득 “미장 플라스(mise en place)가 뭐야?” 하고 물었던 날이다. 그날 이후로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제 우리 집 부엌은 그의 손으로 언제나 칼같이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다. 설거지는 내일 해준다고 그냥 두라던 사람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부엌 정리를 한다. 심지어 이제는 빵 굽는 일뿐만 아니라 요리의 영역도 기꺼이 침범해준다. ‘미장 플라스’ 덕택에 빵이든 음식이든 만드는 과정은 더 즐거워진 눈치다. 덕택에 내 몫은 입맛에 꼭 맞는 빵과 밥을 맛있게 먹어치우는 일이 되었다.

‘미장 플라스’를 직역하면 모든 것을 제자리에 놓는다는 뜻인데, 프랑스 요리에서는 재료 준비 또는 사전 준비를 말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뭐든 다 제자리에 있어야만 허둥대지 않고 프로처럼 깔끔하게 모든 과정을 처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셰프들의 우아하고 절제된 몸짓의 비밀이랄까.

컴퓨터형 인간이 ‘저의 낭만은 빵 굽는 냄새입니다’라고 고백하기까지 2년. 이번 주에 일어난 일이다. 우리의 단양 이주를 앞당기게 된 첫 번째 작업, 별칭 ‘짓는학교, 낭만주방’의 리더가 던진 질문에 대한 그의 답이다. 이 프로젝트에서 각자의 낭만은 무엇인지 제출하라니, 누구보다 소리에게 가장 어려운 질문이 될 줄 알았는데. 세상에, 소리야, 내가 알던 네가 정말 맞는 거지? 네 입에서 낭만이 나오다니, 그렇게도 확실하게. 해가 지는 시간, 숨 가쁘게 석양이 가장 멋진 장소로 달려나와 마을을 온통 불태우는 각양각색의 노을을 함께 바라보는 이 시간이 참 좋구나. 서울이 아직 한여름일 때, 이 가을 바람이 참 좋구나. 너와 함께 하는 이 낭만이 참 좋구나.

짓는학교, 낭만주방의 시작

드디어 지난 주말, 건축가 우영이 형과 언니들의 텃밭에, 더 정확히는 지금 텃밭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있는 블루비의 벌장에 오픈 주방을 짓는 프로젝트 킥오프를 위해 모였다. 농막 하나 짓고 오손도손 살아도 될 일인데, 뭔가 일은 커져서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사람을 살리는 부엌’, ‘삶과 죽음의 순환이 있는 지속 가능한 공간’을 짓는 설계에 들어서 있었다. 정말 이런 일을 벌일 것인가, 예산이 있는가, 참여할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관리는 누가 할 것이며 계속 나이가 들 텐데 감당이 될 것인가, 많은 논의와 고민을 수없이 지나왔다.

3주 전에는 이미 결의를 다진 사전 논의가 있었다. 외과의사 미련한 곰의 초대로 이뤄진 대구행이었다. 우리에게 환경 호르몬이 어떻게 암을 만들고 현대인의 질병이 되었는지, 왜 병원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건강한 몸과 마음을 주체적으로 돌보는 일이 중요한지, 빵이 문제가 아니라 ‘어떤’ 밀가루가 왜 문제의 핵심인지 알려준 미련한 곰의 열린 주방에 모였다.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끝도 없이 쏟아졌고, 이 ‘살리는 주방’ 프로젝트를 할 수밖에 없는 마음은 더욱 강해졌다.

우영이 형은 먼저 3미터 곱하기 3미터의 모듈 9개를 제안했다. 이 모듈을 이리저리 바꿔가면서 이 사공 많은 프로젝트에서 수십 가지의 아이디어가 질서 있게 오갈 수 있다. 소통을 위한 일종의 커뮤니케이션 프로토콜인 셈이다. 총 200평 남짓한 땅에 약 25평의 주방부터 지어질 것이다. 처음부터 전체를 설계하기 위해 무모한 시간을 끄는 것보다 현실적으로 시작에 의견을 모았다. 여기에 우영이 형이 꼭 더하고 싶다는, 책으로 둘러싸인 ‘혼자만의 서재’는 듣자마자 벌써부터 예약이 꽉 찬 공간이 되었다.

우영이 형의 첫 그림이 공유되는 순간, 이제 이 우주에서 우리의 꿈은 돌이킬 수 없는 실체가 되었다. 그동안 참 많은 협업 프로젝트를 해왔지만, 지금처럼 회의가, 일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이 이토록 즐겁고 설레인 적은 없었다. 이 진지함 속에서 노래를 부르고 장단을 맞추고, 시를 읊어주고, 이 와중에 좀 전에 수확한 식재료로 음식을 나누고 술을 나누는 식탁이 함께 하다니. 뒤늦게 참여를 결정한 친구의 말처럼 너무 동화 같은 비현실적인 상황이 아닌가 말이다.

그런데 동화가 가능한 이유, 이 일을 끌고 가는 힘은 단언컨대 서로에 대한 ‘신의’에 있다. 서로의 책임을 따지는 계약보다 더 무서운 힘은 서로에 대한 믿음에 있다. 이야기가 깊어지고 고민이 깊어질수록 신뢰는 더 커졌다. 우영이 형과의 사전 컨셉 회의 기록을 듣던 소나무는 두 가지를 짚었다. 방문객이 아니라 음식을 하는 사람, 거기서 뭔가를 만드는 사람이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는 것. 가장 좋은 뷰를 바라보아야 하며 만드는 모습이 가장 아름다워야 한다는 것이 첫 번째였다. 기존의 모든 공간과 반대다. 두 번째는 숲을 그대로 공간 안으로 끌어들여야 한다는 것, 텃밭과 공간이 경계 없이 하나로 연결되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 회의에 있지 않았는데 마치 있었던 것처럼 절묘하게, 한 번도 나누지 못했던 소나무의 생각은 이미 반영되어 있었다. 한 팀으로 서로 선택하기를 참 잘했구나, 화답이었다.

시간이 깊어가며 이 밤의 수다에서 ‘낭만’이 나왔을 때, 회의는 절정에 이르렀다. 각 잡고 수익 모델 또는 목적 중심의 건축 프로젝트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이 단어를 처음 꺼낸 것은 우영이 형이었다. 지금은 이렇게 의기투합해서 시작해도 앞으로 숱한 걸림돌을 만날 것이고, 서로 실망도 하고 프로젝트를 접느니 마느니 우여곡절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아니 그래서, 이 짓는 프로젝트 과정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한 가지, 낭만이라는 것이다. 낭만이 사라지면 프로젝트의 힘도 없어진다는 것이다. 아, 무슨 말이 필요한가. 우리는 진심 어린 박수를 딱. 딱. 딱. 꼭꼭 눌러 나눠서 한 박자씩 칠 수밖에 없었다. 지어진 다음에도, 밥을 해먹고 프로그램을 해나가고 운영을 해나가는 과정에 낭만을 잃지 말자는 이야기도 덧붙여졌다.

이 낭만 주방 프로젝트는 우영이 형의 짓는 학교 1편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이 프로젝트의 소중한 기록들을 잊지 않고 낱낱이 남기겠지만, 무엇보다 이 공간 자체가 기록장이 될 것이다. 마을을 일군 13년을 지나 이제는 기쁨을 함께 누리는 사람들과 새로 시작하는 언니들의 2부, 초풍요(Surabundance) 시대에 존재로 사는 삶에 대한 우리의 실험, 함께 만드는 가치를 배우는 실험, 시내의 말처럼 한 사람 한 사람의 변화가 몸으로 체험되는 공간과 시간이 거기 있을 것이다. 빵 한 조각, 그 흔한 밀가루 덩어리는 이 거대한 꿈을 이루는 하나의 조각, 각자가 서로의 몸이 되는 거대한 실험의 시작이다.

(현장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2025. 09. 13.
Agnès Y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