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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고 바람부는 발코니에서 가디건까지 걸치고 아름다운 음악을 귀에 꽂고 길을 생각하는 이 시간. 원래는 토종꿀 오픈 소식을 페친들에게 알리려고 했는데 오늘은 좀 다른 글을 써야 할 것 같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친구들의 2/3는 오가닉미디어랩에서 연재하던 오가닉 미디어, 비즈니스, 마케팅 시리즈 글과 책을 통해 만났다. 한꼭지씩 주제를 정리하기 위해서는 약 한달의 시간이 필요했는데, 비가오나 눈이오나 꾸준히 5년간 계속했다. 왜 미디어가 살아있는 생명체이며, 비즈니스가 살아있는 네트워크를 만드는 과정인지, 우리가 얻은 인사이트를 개념으로 정리했고 조금씩 구독자가 늘어났다.
2014년, 오가닉 미디어가 책으로 나온 후부터는 회사들과 워크숍을 시작했다. 지금은 귀한 동반자가 된 사람들을 그렇게 만났고 그러고 보니 어느새 9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들에 대한 제대로된 소개는 책을 통해 머지 않아 하게 될거라 믿는다.)
2017년 4월, 오가닉 마케팅을 출간하고 우리는 신이 났다. 짐콜린스가 ‘좋은 기업에서 위대한 기업으로’에서 언급한 고슴도치 전략을 우리 삶에, 일에 적용해서 드디어 5년만에 선순환이 돌아가기 시작하던 시점이었다. 선순환은 증폭이다. 많은 회사들이 비싼 워크숍을 하고자 찾아오기 시작했고 우리는 성공가능성이 있는 곳들만 골라서 1년의 계획을 세웠다. 제안서도 보고서도 쓸 필요가 없었고 오직 우리의 시간만이 요구되었다.

그렇게 정말 우리가 잘난줄 알고 달리기 시작하던 때에 우리는 인생의 유턴을 맞이하게 된다. 몸과 마음과 영혼이 새로 태어나고 우리 삶의 2부가 새롭게 시작된 데에는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기다림도 있었다.
당시 워크숍 이후에 프로젝트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회사마다 시스템을 구축해야 했다. 그런데 업이 다 달라도 모든 고객, 소비자, 사용자, 공급자, 파트너가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원리는 같았기에 이를 시스템으로 지원하기 위한 회사가 설립되었다. ‘일인상점’이다. 모두가 서로의 서점이 될 수 있다는 실험을 거쳐, 서로가 서로의 상점이라는 개념을 구현하였고 커머스뿐만 아니라 범용적인 플랫폼으로 키워가는 것이 목표였다.
당시 우리는 설립을 도울 뿐이었고 실제 주인공들은 따로 있었다. 10여년전에 스타트업을 창업해서 비싼 수업료를 내고 혹독한 훈련의 시간을 보냈던 아픔(?) 때문에 다시는 창업하지 않겠다 결심도 있었다. 그런데 우리를 믿고 여러 사람들이 큰 일을 벌이기 시작한 무렵 우리가 갑자기 일신상의 문제로 시장에서 사라지게 된 것이다. 그들은 충격과 원망대신 우리를 믿고 기다려주었고 그 덕택에 지금의 우리가 있다.

1년만에 시장으로 복귀하고 2018년 4월, 성영님이 일인상점에 합류하고 2019년 프롬이 론칭된다. 내가 프롬에 공동대표로 함께 하게 된 것은 계획된 것은 아니었지만 이 과정에서 운명처럼 받아들였다. 편하고 쉽게, 시간은 많은데 돈도 많이 벌리는 구조로 일하기를 원했던 얄미운 우리의 삶은 유턴 후에 좀 달라졌다. 조금 더 솔직하자면, 어쩔 수 없이 공동대표를 맡게 되었을 때에도 모든 걸 바닥에서 다시 시작하고 원점에서 몸으로 모든 것을 다시 배워야만 한다고 예상하지는 못했다.
그동안 내가 가장 많이 반복한 일은 제품의 상세페이지를 만드는 일과 고객 전화 응대, 공급자 정산이다. 고객으로 있을 때는 성격이 너무 급해서 전화를 붙들고 답답해하고 화도 많이 냈었는데 지금은 회사로 걸려오는 CS 전화를 개인폰으로 내가 받는다. 눈물나는 인사이트를 서비스에 바로 바로 적용하고 싶기도 하지만 아직 그런 속도를 내지는 못한다. 그래도 이 1천통 덕택에 고객과 시장의 구조를 더 많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우리 길의 나침반이 된 것은 틀림없다(그래도 여전히 힘들다 ㅎㅎ).
프롬의 성장은 더디고 답답한데 매일이 쌓이면서 이 길이 갈 길이라는 믿음은 더욱 커져만 갔다. 그동안 직장생활을 하며기업을 돕는 일을 해왔지만 지금은 생산자 한사람을 돕기 위해 일한다. 한사람 한사람을 만나며 이분들이 안정적으로 가치를 생산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다. 그동안 나는 입으로만 일하고 실행은 회사들이 했었는데 지금은 말해 소용없고 직접 몸으로 하나씩 만들어야 한다. 게다가 계란으로 바위를 너무 오래 치니까 응원하던 사람들도 하나씩 떠나고 ‘저게 되겠어?’ 한다. 이해가 간다.
그런데 그전에는 없던 능력이 하나 생겨났는데, 바로 공감능력이다. 여름 뙤악볕에 서서 벌통을 찍는 동안 괴산의 생산자는 옆에 있는 도라지밭에서 연신 잡풀을 뽑고 있다. 10년전에 토종벌이 거의 멸종한 후 좌절과 반복의 시간을 지나 다시 시작한 제천의 생산자, 안정적인 삶을 위해서는 지금같이 판로가 없어서는 불가능하다. 남쪽 섬에서 내린 충격적인 맛의 토종꿀을 먹으며 판로가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의 이 괴리감.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판로가 없어서 이 귀한 꿀들이 안방에 고스란히 놓여있다는 말인가.

그럼 판로가 왜 없었을까? SNS 마케팅을 안해서인가? 토종벌이 가져오는 꿀의 양이 매년 달라서인가? 하긴, 양도 적고 성분검사 한번을 하려고 해도 돈이 들고 토종꿀에 적합한 기준이 딱히 마련되어 있지도 않다. 그래서 믿을 수 없는 것이 토종꿀이라고 했던가?
토종꿀은 가장 극단적으로 지금의 소비시장을 보여준다. 생산자가 아무리 열심히 하고 소비자가 아무리 정보를 걸러내려고 해도 구조적인 해결이 되지 않는다면 어렵다. 시장의 논리를 따라가지 않으면 가치 생산을 지속하기 어렵고 소비자는 이런 시장을 믿기 어렵다. 한두사람이나 기업의 힘으로 믿을 수 없는 시장이 갑자기 믿을 수 있게 될 리가 없다.
그 구조적인 해결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정치인도, 정부도, 기관은 더욱 더 아니라는 것을 이제 알고 있다. 바로 우리 자신이다. 그런데 각자가 모래알처럼 흩어져서는 공감할 수도 전염시킬 수도 그래서 파도도 만들 수 없다. 연결이 연결을 만드는 선순환의 증폭이 필요하다.
그동안 머리로 이해하고 있었으니 시작도 더뎠다. 그리고 파도를 말하기전에, 이론적으로 구축하고자 했던 네트워크를 말하기전에, 한사람, 두사람이 공감으로 연결되고 전염되는 첫번째, 두번째 사이클에 가장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글은 이제 안쓰냐, 강의는 안하냐, 프롬마켓도 하고 토종꿀도 하는거냐, 언제까지 할거냐, 사람들의 질문이다. 서로가 서로의 상점이자 레퍼런스이자 그 연결이, (분산된 네트워크 구조의) 연대가 믿을 수 있는 소비시장을 만드는 때는 곧 올 것이다. 누구를 통해 올 것인지 모르지만 (우리이기를 바라지만) 반드시 올 것이다.
토종꿀은 그런 시장을 실제로 보여주기 위한 첫번째 프로젝트다. 소중한 것들을 서로 지켜주고 지켜지는 과정이 만들게 되는 시장을 꿈꾼다. 그 과정에서 모든 것이 투명하게 드러나는 것, 설득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신뢰가 되는 시장을 꿈꾼다. 그리고 점차 영역을 같은 방식으로 확장해가는 과정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공감능력도 적잖은 전염이 되어 있으리라 기대한다.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는 ‘언제까지 계속할 것인가’이다. 일이 아니라 삶이니 어디 어느 자리에서든 계속할 일이다. 놀라운 것은 그 보상이 먼 미래에 있지 않고 바로 오늘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이다. 남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그래서 무엇을 보여주고 어디로 올라갈 것인가가 오랜동안 나의 커리어, 의사결정의 기준이 되어온 시간들이 있었다. 이제는 나에게 가장 솔직한 나, 기쁘지 않으면 거절할 수 있는 능력, 깊은 공감이 있을 때 온몸으로 전염될 수 있는 능력이 내게 있다.
2021. 08. 21 윤지영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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