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악순환의 해부학 (Anatomy of Vicious Cycles)

[Why] 악순환의 해부학 (Anatomy of Vicious Cy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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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이면 정말 균일하게 크고 반짝이며 색깔도 너무 고운 사과와 배가 택배상자에 실려 전국으로 배송된다. 그러고 보면 과일들이 우리가 원할 때 원하는 크기와 당도로 열려서 매년 날짜도, 날씨도 달라지는 명절에 선물상자에 공산품처럼 담기려면 어떤 일이 벌어져야 하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농약 성분인 성장촉진제를 맞고, 붉게 반짝이는 사과를 위해 착색제를 바르고, ‘당도를 맞춰서 오라’는 마트의 요청에 따라 딸기에 ‘작업’을 해야하는 현실은 농부의 잘못일까, 마트의 잘못일까, 내 잘못일까, 과일 잘못일까. 자연의 섭리대로 짓는 농사는 점점 더 귀해지는 세상이다.

농산물만은 아니다. 장보기를 할 때 나는 앞면보다 뒷면을 먼저 본다. 앞면에는 분명히 “한 방울까지 그대로 착즙”했는데 뒷면에는 합성향료와 농축액으로 맛을 냈다는 정보가 정말 작은 글자로 쓰여있다. 내가 너무 좋아하는 잠봉과 프로슈토에는 색소와 보존제 역할을 하는 아질산나트륨이 포함되어 있다고 꼭 뒷면에서만 말을 해준다. 잊고 있다가 1급 발암물질이라고 보도가 될 때마다 사람들은 처음처럼 놀란다. 나처럼 ‘유난을 떠는’ 사람들은 참 인생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도대체 상상하기 어려운 인공첨가물이 모든 식품에 들어가 있고 내 몸에 어떤 일을 하는지 알게 되었으니 불편해도 어쩔 수가 없다.

먹을 것은 넘쳐나는데 믿고 먹을 수 있는 것은 점점 더 없어지는 세상이라니, 100세 시대라는데 우리가 생산하고 또 섭취 중인 환경 호르몬으로 질병은 더 많아진 세상이라니, 음식쓰레기를 어떻게 잘 버릴까 고민해야 하는 풍요의 시대에, 80억 인구가 다 먹고도 남을 만큼의 식량이 생산되는 시대에, 세계의 절반은 여전히 굶주리고 있다니 대체 우리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1). 누구 한 사람, 어느 한 기업, 어느 한 국가, 어느 한 현상에서 원인을 찾기에는 그 뿌리는 깊고 복잡하다. 세상을 움직이는 악순환은 사소한 식탁부터 인류의 운명에 이르기까지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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