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는 내게 ‘진돗개’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모든 워크숍이 다르지만 프로그램은 같다. 평소 생각해보지 못한 질문에 답을 찾는 여정으로 시작된다. 그런데 대부분은 이 질문을 피하고 싶어서 온갖 방법을 동원한다. 한두시간 지나서 ‘이 정도면 충분히 나온 것 같아요. 정말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하고 황급히 마무리 발언을 하기도 하고 교묘하게 매개자인 나도, 본인도 속이는 답을 찾아내기도 한다. 대부분의 경우는 본인마저 속이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어떻게 해서든 출구를 찾으려고 한다.
이런 과정은 사실 늘 반복되는 일이어서 당황스럽거나 실망스럽지 않다. 대신 끝까지 하나의 문장으로 답이 나올 때까지 깊이 파고 또 판다. 그러니 ‘한번 물면 놓지 않아요. (빠져나갈 생각을 하시면 본인만 손해에요)’ 라고 동료가 옆에서 거들기도 한다. 그래서 진돗개라는 별명까지 얻었으니 도망은 포기하고 답을 찾는 데에 집중하라는 조언이다.
한번에 최소 4-5시간동안 이런 강도 높은 과정이 진행되다 보니 사무실 같은 공간에서는 워크숍을 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의 오감을 열어서 수시로 충전하고 촉각을 환기시킬 수 있는 환경이 정말 중요하다. 게다가 불편한 질문에 답을 하려면 박스 밖으로 나가서 생각도 해봐야 하고, 최소한 이시간이 기다려지고 신이 나야 그 다음주 워크숍을 맞이할 힘이 또 생긴다. 특히나 지금 진행중인 워크숍의 제목은 ‘댄스위드스페이스(Dance with space)’로 건축가와 함께 하는 공간 프로젝트여서 모이는 장소가 더욱 중요하기도 하다. 짧은 시간이라도 할애해서 꼭 최적의 장소를 고르려고 노력한다.
자연스럽게 워크숍 공간을 선택하는 데에 점점 더 심혈을 기울이고 기분좋은 마무리를 보장하는 맛집을 찾는 루틴을 갖게 된 이유다. 워크숍의 내용이나 결과물들은 차차 별도의 시리즈 글을 통해 공유하게 될 터이니, 우선은 우리가 경험한 도심속 힐링 공간들과 맛집의 음식들을 함께 나누는 것부터 가볍게 시작하려고 한다. 사실 흔하디 흔한게 카페고 식당인데 우리는 모두 매번 참 갈 곳이 없다. “어디서 뭐 먹지?, 일하기 좋은 카페 없나?, 분위기도 좋고 회의도 할 수 있는 공간 어디 없나?” 늘 서로 묻는다.
이번 글은 이런 독자들을 위해 준비한 워크숍 공간 투어 시리즈의 1탄이다. 우리가 매주 찾아내고 경험한 워크숍 공간과 맛집들을 하나씩 소개해보도록 하겠다. (벌써 칭찬 받는 소리가 들린다 :)) 매번 카페 하나, 맛집 하나를 페어로 소개하는 글이 될 것 같다.
주택을 개조한 ‘콘하스@연희동’ 뒤뜰 수영장을 바라보며

지난 금요일 방문한 워크숍 공간은 연희동에 있는 콘하스(CONHAS)다. 연희동에는 예쁜 카페들이 많지만 우리는 주차도 되고, 커피도 맛있는데, 비교적 오래 앉아서 워크숍도 가능하면서, 한번씩 테이블에서 벗어나서 이따금씩 머리도 식힐 수도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혼자만의 생각할 시간을 가졌다가 다시 치열한 책상으로 돌아올 수 있는 분위기 말이다. 콘하스는 결코 쉽지 않은 이 모든 조건에 꼭 맞는 공간이었다.

이 공간은 개인주택을 카페로 개조했다고 하는데, 전체 콘크리트 마감과 높은 천장, 공간의 어디에 서든지 채광을 보장하는 중정과 유리창들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댄스위드스페이스 워크숍답게 우리와 함께 참여중인 건축사는 공간에 도착하면 습관처럼 늘 구석구석 공간을 살피는 일부터 시작한다. 콘크리트 골조뿐만 아니라 모든 인테리어 요소들을 설계 단계부터 꼼꼼히 고려한 건물축물이라며 몇가지 인상적인 곳을 알려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찾아보니 이곳은 이영수 건축가가 지은 주택으로, 2003년 소개된 글에 보면 ‘양광찬란’이라는 이름이 붙여져 있다. 상세한 설명은 여기를 보면 된다. 우리는 수영장에 자리를 잡았다. 모두 피서가는 7월의 한복판에 워크숍을 하고 있어도 하나도 억울하지 않은 힐링의 시간이었다.

이제 집중해서 문서로 결과물을 정리해야 하는 시간에는 자리를 책상이 제대로 있는 공간으로 한번 더 옮겼다. 넓은 창문 너머로 보이는 풍경이 속도감있게 작업을 마무리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오랜만에 만족할만한 결과물이 나왔으니 오늘은 좀 더 상쾌하게 식당으로 향할 수 있다. 예약해놓은 3분 거리의 식당으로 모두 발을 옮길 시간이다.
연희동에 살고 싶은 밥집 ‘고미정’
마무리를 위해 옮겨간 식당은 연희동에서 오랫동안 자리잡고 있는 한정식 ‘고미정’이다.

맛있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식재료나 맛에 여간 까다로운 편이 아니어서 매번 식당을 정하는 일은 쉽지 않다. 고미정은 연희동에 살고 있는 지인이 오래전에 추천해준 식당인데 강남의 끝에 살다 보니 한번도 찾아가기가 어려웠다.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으리라 생각하며 방문하게 되었는데 역시 맛과 정성과 가성비 면에서 모두 감탄스러웠다. 가성비는 사실 중요하지만 가격을 위해 대부분은 식재료를 희생시키기 때문에 식당을 선택할 때 우선순위는 아니다. 그럼에도 식재료와 맛과 가성비, 이 모든 조건을 만족시킨 식당이어서 우리 투어에서 모두에게 합격점을 받았다.

솥밥 기본 정식 15,000원, 게장정식 36,000원 가격에 이천 쌀밥으로 지은 솥밥을 먹는다. 묵은지를 깨끗이 빨아서 끓인 콩비지 두그릇을 비우고 짜지 않고 감칠 맛나는 간장게장의 게딱지를 위해 솥밥 하나를 추가해서 한톨도 남김없이 다먹는 사건이 벌어진 현장이다.


함께 하는 시간이 힘들어도 앞으로 나아가는 결과물이 나올 때는 그만큼 기쁨도 훨씬 크다. 이번 워크숍은 그동안의 한달이 보상받는 것 같은 날이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마무리는 서로 고생했다며 축하해주는 딱 한잔의 건배. 잊지 못할 하루가 이렇게 감사히 지나간다.

#워크숍장소 #힐링공간 #공간투어 #콘하스 #고미정 #댄스위드스페이스
One more thing
댄스위드페스페이스 워크숍의 결과물은 브런치에 건축일지의 형식으로 공개하고 있다. 이 건축일지들이 모여서 무엇이 될 것인가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알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워크숍 프로그램도 소개하고 그에 따른 산출물과 이것들이 모여 만드는 가치를 차근차근 설명할 기회를 가질 것이다. 모든 분야가 업의 본질이 다르겠지만 방향은 같다. 연결된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살아있는 네트워크 관점으로 나의 일을 전환하고 가치를 만드는 방법을 바꿀 것인가에 관한 것이다.
우선은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브런치에 올린 글을 공유한다. 첫 글의 제목은 ‘이 땅이 돈이 될까요?‘ 아파트 설계를 비롯해 지금까지 100여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한 이 건축가는 어느날 도심 한복판에서 숲과 마주한 부지를 만났다.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설계하게 되었는지 세상에 단 하나뿐인 이야기를 전한다. 그 과정에서 독자들은 그동안 궁금해하거나 무심코 지나쳤던 공간에 대한 이해를 나도 모르게 쌓게 될 것이다. 마음만은 (언젠가 내 공간의) 건축주인 독자들과 꾸준히 길을 가볼 작정이다.

이어지는 글에서는 지난 시간 다녀온 우이동의 워크숍 공간과 맛집이 소개될 예정이다. 사진은 그 예고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