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고슴도치의 죽음 (The Death of a Hedgehog)

[Why] 고슴도치의 죽음 (The Death of a Hedgehog)

<이전 글: 프롤로그: ‘Why’인가?>

죽음의 문턱에 이르러서야 알았다. 그때가 2017년 4월. 두 번째 책 오가닉 마케팅이 출간되고 겨우 한 달을 넘긴 때였다. 그간의 노력은 나를 배반하지 않고 정점을 찍기 시작했다. 나는 가장 즐겁게, 열정을 다해 할 수 있는 일에 온전히 몰입되어 있었다. 일을 하면 할수록 나는 성장했으며 내가 하는 일을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었다. 브랜드가 만들어지고 있었고 기업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고슴도치 전략

짐콜린스가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라는 책에서 소개한 ‘고슴도치 전략’의 성공이었다. 원리는 단순하다. 첫째, 내가 열정을 가지고 가장 기쁘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는다. 둘째, 그것으로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는지 자문한다. ‘아니오’가 나오면 ‘예’가 나올 때까지 처음 답을 수정한다. 셋째, 그것으로 돈을 벌 수 있는지 자문한다. 아니라면 다시 처음 답을 수정한다. 세 꼭지가 선순환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다음은 기하급수적인 성장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오가닉미디어랩의 책들은 이 전략을 통해 세상으로 나왔다. 나는 ‘살아있는 네트워크’의 관점으로 모든 것을 보았다. 제품과 서비스, 시장과 미디어, 사회를 보았다. 이 틀걸이는 손에 잡히기 어려워서 사람들에게 하나하나 차근차근 설명을 해야 했고 그 콘텐츠를 만드는 것은 고통스럽지만 희열의 과정이었다. 생각의 변화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보람도 느꼈다.

이 분야에서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예’라고 답했다. 이미 존재하던 영역이 아니라 내가 수풀을 헤치고 개척한 분야였기에 이 길에 아무도 없었다. 어쩌다 돌연변이로 시장에 던져진, 오직 나의 일이었다. 돈을 벌 수 있다는 답을 검증하는 데에는 약 4년이 걸렸다. 강연처럼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전략의 선순환이 스스로 돈을 버는 것을 말한다.

그때가 2017년 봄이었다. 조금만 일해도 결과물은 커지기 시작했고, 돈은 더 많이 벌리는데 바쁘지 않았다. 프랑스 남부에서 한 달을 보낼 계획을 세웠다. 내가 피라미드 세상에서 계획할 수 있었던 정점이 눈앞에 있었다. 이제부터 시간과 돈과 명예와 업적을 누리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나는 행복했다.

죽음의 문턱

처음부터 자신의 인생이 어떻게 펼쳐질지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 설계한 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다. 종합검진 중 내 몸에 이상이 있음을 알게 된 것이 바로 이때다. 수술을 하지 않으면 얼마나 위급한 상황인지 알 수 없다는 진단이었다. 현대인들의 병이라고 부르는 이 불청객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는다. 얼마나 자랐을까, 나에게 이런 일이 벌어질 리가 없는데, 믿을 수 없어서 부정했고 두려웠고 며칠 동안 잠을 잘 수도 없었다.

거실을 둘러보았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우스웠다. 그동안 사서 모은 세간살이가 너무 많았다. ‘이 집에는 예쁜 오브제가 아니면 들어오지 못한다’는 농담을 들을 정도로 꾸미는 것을 좋아했다. 부엌살림도 너무 많았다. 온갖 책들, 장식들, 꽃병이며 보기만 해도 어지러웠다. 그래도 늘 모자라서 더 할 것이 없을까 둘러보곤 하던 집이었다. 옷도 너무 많았다. 늘 입을 옷이 없었는데 언제 이렇게 사들였는지 현기증이 났다. 서재로 가서 우리가 그동안 심혈을 기울였던 오가닉 시리즈 책을 보았다. 우리의 자식이라고 했는데 종이조각에 불과했다. 무엇을 위해 달려온 것인가.

죽음의 문턱이었다. 숨이 찼다. 더 이상 붙들고서는 견뎌낼 수 없었다. 내려놓아야 했다. 3일이 꼬박 지나서야 울음이 터져 나왔다. 내 힘으로 할 수 없다고 고백했다. 내가 쌓은 모든 것이 죽음 앞에서는 한낮 허구였다. 인생의 절정이라고 생각했던 삶은 내가 아니었다. 나는 없었고 대신 내가 쌓은 피라미드가 있었다. 운이 좋았던 나는 늘 받은 것이 많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받은 것을 세상에 환원하는 일을 하며 멋지게도 살고 싶었다.

그러나 나의 실체를 보게 된 것은 죽음의 실체를 경험한 다음이었다. 나에게 행복감을 준 것은 피라미드 안에서의 안락함이었다. 나는 타인의 기준으로 측량되는 더 높은 피라미드를 쌓아왔다. 그리고 스스로를 가둬왔다. 명분과 평판은 앞으로 가도록 힘을 주는 동력이었다. 나는 힘겹게 회사 생활을 하며 오늘을 희생하는 사람들이 딱하고 안타깝다고 생각해 왔다. 스스로 영악하고 지혜롭게 삶을 설계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르지 않았다. 스스로 피라미드의 함정에 놓여 있었다. 죽음 앞에 서서야, 비로소 피라미드에 깔려 소멸한 내 자유의 잔해를 보았다.

내 피라미드의 역사

프랑스 유학시절, 학위를 받더라도 학연이나 지연, 혈연으로 갈 곳이 없는 것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잘 안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도통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개선장군처럼 떠난 유학길은 열등감으로 시작되었다. 모든 수업을 녹음하고 밤을 새워 받아 적었다. 그래도 들리지 않는 대목이 더 많으니 프랑스 학생의 노트를 빌려 대조해 가며 완성했다. 그러다 내가 더 높은 성적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녀는 더 이상 노트를 빌려주지 않았다. 대학원으로 올라갈 때 즈음에는 내 노트를 친구들이 빌려가는 상황이 되었다. 동정보다 인정을 받는 위치가 되니 보상을 받은 것 같았다.

한국에서 유학 온 몇몇 사람들은 사회학을 전공하지 않은 내가 그래도 갈 곳은 없을 거라며, 주는 것도 없으면서,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돌아가면 무엇으로 먹고살게 될지 기대와 걱정이 늘 있었다. 프랑스에 남을까도 생각했지만 이방인의 삶은 한계가 있었다. 소시민으로 살고 싶지 않았다. 학계 피라미드에서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면 나는 무엇을 할까. 아마도 내가 만든 독립형 피라미드의 본격적인 준비는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집으로 돌아와 대기업 임원 명함으로 살 때에는 모두가 나를 대단하게 바라봐 주었다. 갑자기 높은 피라미드로 올려졌다. 그런데 그 자리는 여간 불편하지가 않았다. 대기업의 피라미드는 굉장히 부지런한 사람에게만 적합한 것이어서 나처럼 게으른 경우는 견디기가 어려웠다. 이곳은 위와 아래를, 심지어 옆도 돌봐야 했고 나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었다. 게다가 해보고 싶은 것은 참지 못하니, 당시 창업에 대한 용감한 결정은 필연이었다.

명함이 바뀌자 갑자기 피라미드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동안 사람들에게 존중받은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자리였다. 나는 이제 아무도 아니었다. 원점이었다. 그때는 그런 인식이 있을 리가 없었다. 전쟁터에서 빗발치는 총알을 막으며 전쟁 중이었다. 살아있는 시장을 만나, 살아있는 네트워크를 다시 몸으로 배우게 되자, 혼자서 비밀로 간직할 수가 없었다. 글을 쓰기 시작한 후에야 한 명의 청중도 없는 곳에서 또 새로 시작한 피라미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또다시 쌓았다.

상관없었다. 차곡차곡 가야 할 길을 갔고 오가닉 시리즈가 태어났다. 그 후편은 여러분이 알고 있는 바와 같다.

내 가면의 발견

이것은 내 피라미드의 역사다. 지금은 스스로 피라미드라고 거침없이 부르지만 그동안 단 한 번도 알아챈 적이 없었다. 여태껏 나는 세상의 피라미드 밖에 있다고 믿어왔다. 내 길을 나 스스로 개척했으니 내가 주인이라고 믿어왔다. 일렬로 줄을 서서 피라미드 위로 올라가는 사람들의 삶을 동정했다. 아무도 나를 구속하지 않았고 구속할 수도 없는 환경을 끊임없이 만들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런 내가 피라미드 안에 있을 리가 없었다.

바로 그 믿음이 내가 쓰고 있던 가면이었다. 쌓고 올라가기를 반복하면서 나는 피라미드를 인지하지 못하게 된 것일 뿐 피라미드 밖에 있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나를 구속해 온 것은 나 자신이었다.

타인이 인정을 해야 오를 수 있고 스스로는 올라갈 수 없는 것이 암묵적으로 합의된 피라미드의 원칙이다. 타인이 주인이며 나는 순응해야 하는 피동자다. 피라미드는 타인의 평가, 세상의 평가를 통해 한 단계 위로 올려지는 경험이 시작될 때, 더 높이 올라가고 싶은 충동이 일어날 때 내 안에서 형체를 드러낸다. 가면은 내가 이 피라미드의 주인이라고 말하며 나를 이끌었다. 타인과의 경쟁과 타인의 인정으로 지어진 세상의 피라미드에 ‘나’는 없었다.

죽음의 문턱은 비로소 그 밖으로 나올 수 있는 문이 되었다. 그리고 문득 공기처럼 가볍고 먼지처럼 작은 나를 처음으로 바라보았다. 새로운 세상이 여기 있었다.

2023년 2월 24일 늦은 오후, 단양 ‘달팽이텃밭’ 가는 길

<다음 글: 어느 강아지의 발견 (The Discovery of a Pu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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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용 예시: 윤지영[Why] 고슴도치의 죽음, 오가닉 미디어랩, 2023, https://organicmedialab.com/2023/02/26/why-death-of-a-hedgehog/

Feb 26, 2023

Dr. Agnès Yun (윤지영)
Founder & CEO, Organic Media L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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