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왜’를 찾아서 1편: 9시간의 사투

[WHY] ‘왜’를 찾아서 1편: 9시간의 사투

<이전 글: [Why] 직업의 종말 (End of Jobs)>

나에게 “무슨 일을 하세요?”라고 묻는다면 “나만의 ‘왜(Why)’를 찾는 것을 도와주는 일을 합니다”라고 답할 것이다. “왜 그 일을 하세요?”라고 물으면 “한 사람의 변화가 그 ‘왜’에서 시작됩니다”라고 답할 것이다. “고작 단 한 사람이요?”라고 묻는다면 “한 사람의 변화는 가장 강력합니다. 세상의 변화가 여기 있습니다”라고 답할 것이다.

연결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한 사람은 전체와 연결되어 있다. 연결을 만드는 매개자로서, 네트워크의 주체로서 각자의 세계를 이끌고 그 결과 세상을 결정한다. 그래서 연결이 지배하는 세상은 하나의 유기체다. 단 한 사람이 전체의 운명을 결정하는 상호의존적 관계에 있다. 과거의 경직된 조직처럼 기계적이고 위아래의 위계와 지배구조를 가진 모양에서는 불가능하던 일이다. 그러나 비즈니스든, 미디어든, 교육이든, 어떤 분야이든 간에 이 낡은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조직은 이미 도태되거나 소멸로 가고 있다. 여기, 한 사람이 만드는 새로운 세상이 있다.

‘왜’는 그 시작이 되어줄 질문이다. 누구를 만나고 조직하고 협업하기 전에 자기 삶의 주인으로 온전히 서는 것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왜’는 요즘 유행처럼 고객을 팬으로 만들기 위한 전략적 사고가 아니다. 존재에 대한 본질적 질문이다. 이를 통해서만 네트워크의 살아있는 주체로서 소식을 전하는 사람들과 함께 갈 수 있다. 가야 할 곳이 어디인지, 새로운 가치의 축이 무엇이고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몸으로 세포로 체험할 수 있도록 서로 보여주고 돕는 사람들과 동행할 수 있다. 이 글은 그 여정을 돕기 위한 여행 가이드다.

어느 건축가의 여정

그는 유능한 건축가였다. 어려운 문제가 주어지면 항상 테두리 밖으로 나가서 해결책을 찾아왔다. 건축주들은 그런 능력을 높게 평가했다. 아무리 어려운 땅이 주어져도 (예컨대 북향인데 앞은 막혀있고 경사도 심한데 심지어 사각형이 아닌 땅) 반드시 답이 있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설계도면을 받아본 건축주들은 그가 얼마나 자기 일을 좋아하는지 대번에 알 수 있었다. 30년도 넘게 진행해 온 100개가 넘는 프로젝트가 그에게 모두 유일했다.

그런데도 그는 악순환 속에 있었다. 밥을 먹을 시간도 없이 언제나 쫓기고 있었고 모든 프로젝트는 하나같이 설계변경과 설득에 사용하느라 진이 빠지는 중이었다. 일을 할수록 가치가 쌓여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우리는 그가 설계한 공사현장에서 약 200일가량 함께 일하면서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아주 세세히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이 한 사람이 ‘왜’를 찾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몹시 궁금해졌다.

‘왜’는 협업하는 팀을 한 방향으로 바라볼 수 있게 만드는 시작점이다. 우리가 목격한 건설 현장은 한 방향은커녕 모두가 자기 방향만 바라보며 앞으로 가지 못하는, 어쩌면 가장 낙후된 분야의 청사진이었다. 공간의 경험은 더욱 중요해지는 반면 유한한 지구에 왜 자꾸 흉물이 가득차고 있는지도 배우게 되었다. 건축가를 포함한 모든 관계자가 업의 본질적인 문제의 악순환에 동참하고 있었다. 이 한 사람의 ‘왜’가 이 상황을 선순환으로 되돌릴 수 있을까. 무엇보다 이 일에 진심인 한 사람을 돕고 싶었다. 그런데 완벽하게 짜인 그의 경력과 타인을 설득하는 언변, 탁월한 문제해결 능력만큼 두터운 그의 방화벽을 뚫어낼 수 있을까.

항상 질문의 여정을 시작할 때 처음에는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이걸 배우면 더 빨리 가나요? 더 많이 버나요? 더 새로운가요? 더 유리한가요?” 머릿속은 이런 것들로 이미 가득 차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빠른 출구를 찾는다. 완벽한 논리속에서 질문자가 듣고 싶어 하는 정답을 말한다. 지어낸 정답도 아니다. 스스로 정답이라고 믿고 있어서 더 어렵다. 오랜 기간 숙성된 합리화된 믿음이다.

그것은 자연스럽게, 우리가 수십 년 받아온 정답 맞히기 훈련이 그랬듯이, 본질적 질문에 다다르지 못하고 워크숍을 설득의 과정으로 둔갑시킨다. 너무나 논리 정연하게 답을 잘한 것 같은데도 내가 만족하지 못하고 자꾸 꼬리를 물고 이어가면 이제는 짜증도 난다. 모두 이 정도 했으면 충분하다는 결론을 (아직 본질적 질문과 답을 발견하지 못한 길 위에서) 황급히 내리며 그만 마무리되기를 재촉한다. 하지만 99도에서는 물이 끓지 않는다. 99도는 ‘왜’를 찾는 여정에서 0도와 같다. 거의 다 온 것 같은 경험까지는 누구나 어렵지 않게 갈 수 있다. 하지만 반드시 물이 끓는 비등점까지 도달해야 비로소 의미를 만난다. 아무리 문고리를 붙잡고 나갈 준비를 해도, 100도까지 안내하는 것 말고는 끓도록 도울 다른 방법이 없지 않은가.

9시간의 사투

사전 세션들은 생략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자. 우리는 건축가로서 누구의 어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자 하는지 질문을 시작했다. 30년 경력의 전문가에게 너무 당연해서 오히려 죄송스러운 질문이 아닌가. 하지만 여기서부터, 우리는 30년을 여행한 후 맨 마지막에 다시 이 질문으로 돌아오게 될 것을 알고 있다. 목적에서 너무 멀어져 다시는 되돌아오지 못할 것 같은 순간을 여러 번 지나, 심지어 지나온 인생을 복기하고, 잔혹했던 시행착오도, 세포를 깨우는 설렘도, 그 근원까지 들어가 만져보게 될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도록 돕는 것”이 건축가의 역할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멋졌다. 처음이자 마지막인 프로젝트에 임하는 건축주를 돕고 그들의 상상을 실현시켜 주는 것이 업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건축이란 단순한 결과물이 아니라 건축주, 사용자, 건축가의 역사(이야기)를 담아내는 과정으로 정의되었다. 답은 완벽했다. 하나하나 쪼개고, 분쇄해하며 비집고 들어갈 틈은 별로 없어 보였다. 세션이 굉장히 길어질 것이 분명했다.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우리는 9시간 동안 질문과 답을 이어갔다. 현실적인 문제를 하나하나 짚고 해체하며 ‘왜’와 답을 주고받았다. 아파트, 빌딩 등 수익을 위해 존재하는 수많은 건축 프로젝트의 본질적인 모순과 악순환의 이유들을 밝혀내는 과정에서 그는 건축가로서 일생을 돌아보는 긴 여행을 했다. 어떤 구조로 업의 문제가 건축가 개인의 문제로 고착되었는지, “그를 살아있게 하는 설계”와 “고객의 수익을 위한 설계”,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 일해왔는지, 시행착오는 실제로 어느 구간에서 발생해 왔는지 찾아가며 웅덩이도, 들판도, 절벽도, 바람도 만났다.

어렵고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들에 모두가 완전히 몰입되어 있던 그때, 그를 오직 ‘살아있게’ 해준 것은 다름 아닌 설계였다는 고백이 이어졌다. 천직이었다. 먹먹한 정적이 방안에 감돌았다. 세션은 이제 클라이막스를 향해 가고 있었다. 보석은 그가 오래전부터 가져온 것이다. 고작 질문 몇개로 찾아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가 그 실체를 보기만 하면 된다.

Stairway to Why

바닥에서 발견한 빛

‘왜’로 시작된 질문을 계속 들어가 보면 문득 놀라운 바닥까지 다다르게 된다. 내 안에 쌓여온, 그래서 나름의 형태가 만들어진, 오랜 시간 간직되어 왔고 지금도 자라나고 있는 비밀이 있으며, 이 비밀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 내가 일해야 하는 이유,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 전해야 할 가치임을 저절로 알게 된다. 그래서 내가 발견한 나만의 ‘왜’는 가치가 만들어지는 뿌리다. 생명의 시작이다. 내가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의사결정의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다시 찾아오는 베이스캠프다.

규격화된 삶과 의식과 세계관 속에서도 죽지 않고 심지어 살아서 자라나고 있던 생명을 발견하게 되면 그것만큼 놀라운 순간이 없다. 우리 각자는 모두 유일한 존재다. 우리가 만든 규격화된 체계 안에서도 모든 생명은 다르게 태어나고 자란다. 아무리 같은 교육을 해대도, 왜 빨리 말을 배우지 못하냐고, 읽지 못하냐고, 계산하지 못하냐고, 생산하지 못하냐고 다그쳐도 그 생명은 죽지 않고 온 삶을 통해 유일한 경험을 누적해 왔다. 각자가 만나고 듣고 보고 읽고 생각하는 낱낱의 순간이 나를 만나 경험을 잉태시킨다.

그래서 경험이란 양방향의 기록이다. 어떤 외부의 입력도 만남도 내 개입 없이는 경험이 되지 못한다. 같은 것을 보아도 다른 기억을 갖는다. 다르게 느끼고, 다르게 표현하며, 각자의 경험 일기장에 다르게 쌓인다. 내가 억눌려 있는 순간에도, 인지하지 못해도 내 경험은 자란다. 의식이 자라나는 동안, 발견되지 못해 잠을 자고 있더라도, 나를 울리는 것, 나를 움직이는 것, 나를 신나게 하는 것, 나를 설레게 하는 것, 나를 감동시키는 것, 나를 새롭게 하는 것, 나를 살아있다고 알려주는 생명의 근원이 반드시 있다. 그 누구도 발견해 낼 수 없고, 대신해 줄 수 없고 빼앗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내 안에 감추어진 비밀, 단 한 번뿐인 내 삶의 주인으로 나를 이끌어줄 나침반, 그 비밀이 있다. 내 안에서 자라난다.

저녁 8시 45분. 공간의 관리자가 회의실 문을 두드렸다. 9시면 문 닫는 시간이라며 그만 정리해야 한다고 일러주었다. 건축가는 주섬주섬 일어설 채비를 했다. 오늘 정말 긴 여정이었고 많은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앞으로 일이 많이 바뀌게 될 것 같다며 고맙다는 인사를 진심으로 전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아무 곳에도 도달하지 못한 상태였다. 남은 15분이면 물이 끓기 충분한 시간이라고, 분명히 찾아낼 수 있다고 그를 붙들었다. 그리고 8시 55분, 갑자기 물이 끓기 시작했다.

그는 누구의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존재하는 건축가인지, 하나의 문장으로 명확하고 뾰족하게 정리해 냈다. 그도 우리도 놀라움으로 시간은 잠시 멈춘 것 같았다. 그 순간은 모두가 알게 된다. 그것이 진정한 ‘왜’인지, 원래 감추어졌던 비밀이 발견되는 순간인지, 그럴듯하게 만들어낸 문장인지 본인도 듣는 사람도 단번에 알 수 있다. 너무도 단순하고 베일 듯 뾰족해서, 그가 아니면 그 누구도 그 일을 해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이 온다. 8시 55분, ‘왜’가 풀려나는 순간을 모두 목격하기에 이르렀다.

다음 편 이어서 읽기 <[Why] ‘왜’를 찾아서 2편: 내가 찾은 비밀>

* 많은 공유와 피드백 부탁드리고 글을 인용하실 때에는 반드시 다음과 같이 (링크를 포함한) 출처를 밝혀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 인용 예시: 윤지영, [WHY] ‘왜’를 찾아서 1: 9시간의 사투오가닉 미디어랩, 2023, https://organicmedialab.com/2023/07/26/why-in-search-of-why-part-1/

Jul 26, 2023

Dr. Agnès Yun (윤지영)
Founder & CEO, Organic Media Lab
email: yun@organicmedialab.com
X (Twitter): @agnesyun
Linkedin: agnesyun

2 thoughts on “[WHY] ‘왜’를 찾아서 1편: 9시간의 사투

    • 여기서 뵈니 더욱 반갑습니다 🙂 2편 ‘내가 찾은 비밀’과 3편 ‘질문의 힘’이 발행되어 있습니다. 재밌게 읽으시고 피드백도 부탁드립니다! 기쁜 한 주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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