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이 지배하는 세상, 화폐의 필연적 진화 (Inevitable Evolution of Money in a Connected World)

연결이 지배하는 세상, 화폐의 필연적 진화 (Inevitable Evolution of Money in a Connected World)

얼마전 일본을 다녀오면서 환전 때문에 한바탕 곤혹을 치뤘다. 새벽에 김포공항 환전소가 문을 닫는 바람에 곧장 출국, 현지에서도 기회를 놓치고 엉겹결에 동경 근처 시골로 바로 가게 된 것이다. 설마 했는데 식당도 박물관도 현금이 아니면 먹을 수도 구경할 수도 없었다. 가까스레 현금 인출기를 찾았지만 일본 카드가 아니면 무용지물이었다. 라면 한그릇도 못사먹는 처지가 되니 지갑속의 원화는 돈이 아니라 그냥 종이였다. 우여곡절 끝에 한국분을 만나 십만원 정도 환전하는데 성공하고 눈물겨운 하루는 천만다행으로 일단락 되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돈의 단위가 커뮤니티별로 따로 존재하고 물리적인 경계에 따라 구분되는 상황말이다. 필자는 이 글에서 시대적 변화의 상징으로서 화폐를 짚어보고, 연결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화폐는 왜, 어떻게 변화할 수밖에 없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새로운 화폐구조가 우리 생활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시기는 이를 수도 늦을 수도 있다. 그 주인공이 비트코인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네트워크의 진화에 기반한 세상에서 새로운 화폐(거래) 시스템은 불가피해졌다는 것이다. 지금부터 그 이유를 알아보도록 하겠다.

화폐는 시대의 상징이자 언어이다

화폐는 세상의 변화와 함께 해왔다. 물물교환 즉 화폐없이 물품을 맞바꾸던 시대가 있었고 그 후에는 소금이나 곡식, 옷감과 같은 물품을 화폐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산업과 무역이 활성화되자 금화와 같은 규격화된 동전, 문서(지폐) 형식으로 금과 맞교환이 가능한 태환화폐가 통용되었고 이는 비교적 최근까지(미국에서 금태환 거부를 선언한 1971년) 계속 되었다. 그 다음이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지금의 화폐이다. (*매개체로서의 화폐의 의미, 그리고 사회적 관계 전반에 걸친 화폐의 영향에 대해서는 이 글에서 별도로 다루지 않는다. 관련 내용은 짐멜의 돈의 철학 또는 짐멜의 모더니티 읽기 중 ‘1부 1장: 현대 문화에서의 돈’ 참고하기 바란다.)

2007년 5만원권의 도안 인물로 선정된 신사임당. 최초의 '여성' 모델인 반면 '현모양처'를 모델로 삼았다는 점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2007년 5만원권의 도안 인물로 선정된 신사임당. 최초의 ‘여성’ 모델인 반면 ‘현모양처’를 모델로 삼았다는 점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실물 가치(금)와 화폐와의 직접적 관계가 끊어지고 ‘신용’이 경제 가치를 주도하게 된다. 이제는 지폐(재미있게도 우리는 이것을 ‘현금現金’이라고 부른다)를 들고 다니지도 않는다. 대신 신용카드, 은행 이체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숫자로만 거래가 이뤄지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화폐는 독립적으로 세상의 변화에 적응하거나 이끄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회적 현상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함께 기여하고 진화한다. 특히 철학자 장-조세프 구는 화폐와 언어, 미술의 역사가 서로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상호작용하면서 사회적 관계를 표출하고 반영해왔다고 설명한다[Jean-Joseph Goux, Symbolic Economies, Cornell University, 1990].

예전에는 세상을 보이는대로 인지하고 표현했다. 보이는대로 문자를 만들었고(상형문자), 보이는 것을 사실대로 그렸으며(사실화/ 15세기전까지는 보이는 것보다 기록된 것을 그렸고 원근법도 그 이후에나 도입되었다. 문맥상 이런 스토리는 생략한다), 실물을 기준으로 가치를 매겼다(물품화폐, 태환화폐). 그러나 세상을 인지하고 표현하는 방식은 변해왔다. 19세기 말 소쉬르(F. de Saussure)가 제시한 기호학이 그렇다. 단어(기표, Signifiant)와 그 단어의 의미(기의, Signifié)가 미리 정해진 1:1 관계가 아니라는 주장은 곧 세상을 보는 새로운 틀걸이가 되었다.

소쉬르의 기호학은 1910년, 칸딘스키가 처음 추상화를 선보인 때와 시대를 같이 한다. 추상화를 통해 세상은 ‘관계’를 통해 해석하는 대상이 되고 이것을 표출하는 상징, 분할, 질서, 형태 등이 새로운 문법으로 등장한다. 장-조제프 구는 화폐의 상징 체계 또한 같은 맥락에 있음을 지적하였다. 예컨대 소쉬르의 구조주의, 칸딘스키의 추상화는 금융자본주의의 출현과 동시대에 이뤄진 것이다. 이때가 바로 화폐 단위가 현물(금)대신 기호로 표현된 종이로 교체된 시기이기도 하며 곧 산업 자본주의에서 금융 자본주의로 중심축이 이동한 시기인 것이다[Jean-Joseph Goux, ‘Cash, Check or Charge?’, in Communication, 1989, p 7-22].

Wassily Kandinsky - Impression III (Concert) - Google Art Project

Wassily Kandinsky, Impression III (Concert), 1911

그 후로는 아예 사람이 직접 거래를 하지도 않고 돈이 실제로 이동하지도 않게 되었다. 화폐의 단위는 존재하되 거래는 전산으로만 이뤄진다. 심지어 주식으로 미래를 사기도 한다. ‘신용’ 카드가 주는 온갖 상상과 자유, 담보, 빚의 세계는 거래수단으로서의 화폐와 현실 세계를 더욱 멀어지게 만들었다고 하겠다.

화폐의 진화를 요구하는 3가지 현상

그럼 연결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화폐는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금융시장에서 돈으로 물건 대신 돈을 사는 것이 가치를 만들어왔다면 이제는 정보, 나아가 데이터가 돈이 되는 시대가 되었다. 금융 자본주의가 정보(데이터) 자본주의로 넘어가는 과정이다. 쇤버거의 주장처럼 세상은 이제 물질이 아니라 정보로 이루어진 세상이 된 것이다[Viktor Mayer-Schonberger and Kenneth Cukier, 빅 데이터가 만드는 세상(Big Data: A Revolution That Will Transform How We Live, Work, and Think), 21세기 북스, 2013(원서출판: 2013)]. 있는 자원에 금값처럼 가격을 매기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가 가치를 생산하는 재료가 되고 그 자체로 가치가 된다. 여기서는 화폐도 거래도 변화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1. 화폐는 물리적 경계를 넘는 정보이자 데이터다

이제 우리가 도처에서 숨쉬기처럼 항상 하는 활동이 모두 기록이 되고 데이터가 된다. 여러분의 모든 활동이 커뮤니케이션으로 해석되고 기록되는 것이다. 돈을 주고 받든 메신저에서 대화를 하든 글을 올리든 마찬가지이다. 모든 행위는 정보의 흐름으로 처리되고 기록된다. 이 관점에서는 돈인지 숫자인지 정보인지가 중요하지 않다. 결국 우리가 상호작용하는데 쓰는 모든 수단이 곧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다. 우리의 흔적은 모두 커뮤니케이션의 흔적이 되는 것이다. 돈을 주고 받는 거래도 당연히 예외가 아니다.

거래를 커뮤니케이션으로 생각하는 순간 지역 개념은 사라진다. 정보 거래의 경우는 이미 지역이 없어졌다. 해외여행중이라도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리고 메일을 체크하고 전화를 주고 받는다. 물건을 구매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필자처럼 관세와 운송비를 절감하기 위해 ‘직구(해외에서 직접 구매)’, ‘배대지'(배송을 대행해주는 서비스)를 이용하는 독자도 많을 것이다. 해외 직구의 거래규모가 연간 1조를 넘은 수준이다. 이것은 과도기적인 현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점차 상거래가 정보의 거래로 일반화되면서 지역에 상관없는 거래와 화폐의 출현은 불가피해질 것이다(그 역할을 하는 화폐가 지금 화폐의 보완재인지 대체재인지는 다른 관점이다).

2. 화폐의 중심이 컨테이너에서 컨텍스트로 이동한다

세상의 중심축이 데이터로 이동함에 따라 연결(데이터의 연결, 콘텐츠의 연결, 사람의 연결 등)이 가치가 되는 시대가 되었다. 여기서는 콘텐츠가 ‘어디에 담겨 있는가’는 핵심이 아니다. 한동안은 종이에 인쇄해서 배달하는 것이 뉴스인줄 알았는데 이제는 어디든 담을 수 있다. 페이스북 페이퍼든 카카오톡이든 상관이 없다. ‘미디어의 3가지 구성요소‘에서 이미 언급했지만 물리적 컨테이너는 해체되었고 대신 연결된 콘텐츠와 연결되지 않은 콘텐츠가 존재할 뿐이다(콘텐츠의 가치를 만드는 컨텍스트 관점은 ‘컨텍스트에 답이 있다‘를 참고하기 바란다).

화폐도 마찬가지다. 동전이든 종이든 주식이든 문제는 더 이상 컨테이너에 있지 않을 것이다. 연결이 지배하는 세상의 모든 미디어가 그렇듯이 화폐 또한 거래를 하는(연결을 만드는) 컨텍스트가 중요해질 것이다. TV, 라디오 등의 전통 미디어와 같이 화폐에서 컨테이너 종류는 제한될 수밖에 없었지만 컨텍스트는 무수히 많아진다.

우선 거래를 방해하는 컨텍스트들이 있다. 액티브X는 대표적인 거래 비용이자 거래의 컨텍스트다. 한국에서 결제 한번 하려면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띄우고 프로그램을 깔고 신용카드 번호를 입력하고 주민번호를 입력하고 때로는 ARS 인증, 휴대폰 인증까지 필요하다. 한국의 상거래 진화의 발목을 잡고 있는 이 복잡한 컨텍스트도 아주 오래 버티기는 어려울 것이다. 원클릭을 내세운 경쟁사들이 한국 시장에 들어오고 사용자 경험을 개선하는 환경을 만든다면 이것은 거래 비용의 절감이자 곧 거래의 새로운 컨텍스트가 될 것이다.

액티브X와 같은 심각한 장벽이 아니더라도 구매든, 기부든 ‘귀찮아서’ 돈을 쓰지 않는 경우는 많다. 이처럼 여러분들의 노고와 시간을 포함하여 거래와 관련된 모든 환경이 컨텍스트라고 하겠다. 아직까지 소액결제(micropayment)가 활성화되지 못한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지금까지 거래는 거래를 하는 비용 자체가 많이 들기 때문에 결국 거래할만한 가치가 있는 단위가 어느 정도 정해질 수밖에 없었다. 소액 결제가 필요한 곳이 수없이 많더라도 말이다.

페이스북의 '좋아요'은 아무리 눌러도 실제로 기아 난민을 돕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광고 캠페인(Publicis Singapore)

‘좋아요’를 아무리 눌러도 실제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현실을 일깨워주는 광고 캠페인(Publicis Singapore)

그런데 ‘도와주세요’라는 포스트에 좋아요를 누를 때마다 100원씩 실제로 기부할 수 있다면 어떤가? (지금도 기부가 가능하다지만 거의 자동으로 기부되지 않는다면 계속 기부를 포기하게 될 것이다.) 좋아요마다, 이메일을 보낼 때마다 10원씩 지불하는 대신 스팸에서 해방될 수 있다면 어떤가? 개인에게는 아주 사소한 금액이지만 스팸메일을 보내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많은 돈이 필요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사소하고 시시한 연결의 합이 거대한 네트워크 세상을 만드는 것처럼 화폐의 가치를 컨텍스트가 만드는 세상은 이미 오고 있다. 다만 화폐의 단위가 백원, 천원, 만원 등으로 미리 쪼개져 있거나 한화, 엔화, 달러 등으로 물리적 경계에 따라 구분된 구조를 벗어나지 않으면 쉽지 않을 것이다.

3. ‘이거 비밀이야’는 더 이상 보안이 아니다

마지막은 보안이다. 요즘만큼 보안 이슈가 자주 등장한 적이 없다. 우리는 재산(대출 등 빚을 포함하여)을 모두 은행이라는 제3자에 위탁했다. 대신 우리의 모든 개인정보와 비밀번호를 모두 제3자와 공유하는 구조를 선택한 상황이다. 그런데 돈이 정보로만 존재하다보니 훔치는 것도 훨씬 쉬워졌다. 부가 우리집 곡간과 금고에 실물로 존재한다면 가가호호 일일이 방문하며 훔쳐야겠지만 이제는 은행을 해킹하면 된다. 더 큰 문제는 ‘이거 비밀이야’라고 말하면서 비밀이 지켜지기를 빌어야 하는 현실이다. 비밀번호를 공유하는 순간 그 번호는 더 이상 비밀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비밀을 공유하는 것도 문제고 한 기관이 개인정보를 모두 보유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비밀을 지키려고 더 많은 개인정보를 더하면 더할수록 더 많은 정보가 노출될 뿐이다. 그렇다면 비밀을 공유하고 자산의 보안을 위탁하는 방법 자체가 재고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최근 자주 털리는 은행이나 신용카드사의 심각한 보안 문제는 기존 거래의 구조적 문제를 내포한다고 하겠다.

은행에 돈을 맡기는 구조는 오랫동안 제 역할을 해왔다. 은행이 있어야 거래가 가능했고 은행에 맡기는 것이 안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연결되고 경계가 없어지는 세상에서는 이 당연한(?) 방식이 구조적 문제로 표출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러분의 부와 비밀(개인정보)을 제3자에게 맡기지 않고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하겠다.

지금까지 시대적 변화의 상징으로서 화폐를 살펴보고 연결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화폐가 왜 필연적으로 변화할 수밖에 없는지 알아 보았다. 화폐의 진화를 요구하는 위의 현상들은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연결된 이슈들이다. 화폐가 정보거래가 되는 세상에서는 거래 방식, 화폐의 생산과 보관 등 모든 것이 변화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보안 기능을 바꾸거나 소액거래를 활성화하는 서비스를 도입하는 문제가 아니다. 새로운 차원의 거래 구조, 결제 시스템, 그러므로 화폐 개념의 변화를 의미할 것이다. 화폐는 정보가 되었고 여기서는 거래의 컨텍스트가 화폐의 가치를 만들게 되는 것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다음 편 예고 (비트코인 화폐, 진화하는 유기체)

다음 편에서는 비트코인의 연결, 매개, 협업의 특성을 중심으로 비트코인이 왜 대안이 될 수밖에 없는지 알아볼 것이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차원의 화폐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유기적 네트워크’ 관점에서 설명하게 될 것이다. 화폐가 기존처럼 법으로 정해지고 제3자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매개자’로 참여하고 유기적으로 성장시키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에 주목하고자 한다.

한가지, 비트코인이 아직 검증도 되지 않았는데 대안이라니 너무 성급하지 않은가 하는 의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 글에서 비트코인은 고유명사라기보다 대명사다. 화폐의 컨테이너에서 벗어나 유기적 네트워크에 기반한 새로운 거래 시스템을 말한다. 지금으로서는 이것을 비트코인이라고 부르는 것 뿐이다. 비트코인 이후에 더 훌륭한 대안들이 나올지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이슈를 정리하고 전망하기에는 충분한 예시가 될 것 같다.

<다음 포스트: 비트코인, 우리가 은행이다(We are a Bank in Bitcoin)>

<관련 포스트>

February 5, 2014
Dr. Agnès Jiyoung YUN
Founder & CEO, Organic Media Lab

email: yun@organicmedialab.com
facebook: yun.agnes, organicmedialab
Twitter: @agnesyun
Google+: gplus.to/agnesyun

3 thoughts on “연결이 지배하는 세상, 화폐의 필연적 진화 (Inevitable Evolution of Money in a Connected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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