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저널 사건으로 본 전통 저널리즘의 종말 (The end of old journalism through the lens of a WSJ-Elon Musk incident)

월스트리트저널 사건으로 본 전통 저널리즘의 종말 (The end of old journalism through the lens of a WSJ-Elon Musk incident)

주변에 기자, 미디어 관계자가 많다. 오가닉미디어 책을 내기 전부터 맺어온 인연이다. 한동안 토마토나 블루베리 파이, 꿀벌에 대한 진심으로 침묵해온 주제인데 이번만은 안되겠다는 마음으로 오래간만에 글을 쓴다. 어제 벌어진 월스트리트 저널 사건은 전통 (매체) 저널리즘의 종말을 알리는 상징이자 증거로 기록되기에 충분하다.

연결이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최소 1명 이상의 팔로어를 가진 우리는 모두가 기자이고 미디어다. 그러니 모든 기사를 실어 나를 때 정확한 정보인지 사전 확인부터 할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 일반인들도 이런 의무가 있는데 전문기자와 언론사는 어떨까? 팩트 체크는 당연하고 독자와 시청자들의 판단을 돕기 위한 정확한 근거 제시, 객관적인 분석과 보도는 당연한 의무다. 그렇지 않으면 존재할 가치가 없다.

7월 24일 월스트리트 저널에 일론머스크가 절친인 구글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의 아내와 불륜임이 밝혀졌다는 기사가 실렸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연합뉴스, 지디넷 등 한국의 모든 매체도 ‘무릎을 꿇고 빌었다’며 이를 앞다투어 보도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런 언론사의 글을 퍼 나르며 내 이럴 줄 알았다며 혀를 차고 욕을 하는 글들을 수없이 올리고 있다. 순식간에 SNS, 포탈, 블로그에 조소가 넘쳐흐른다. 그중에는 안타깝게도 개인적인 친분이 있거나 꽤나 신뢰관계를 쌓아온 사람들의 글도 보인다.

중앙일보 7월 25일자 기사

그가 누구와 불륜관계였는지 아닌지는 나도 알 수 없고 알고 싶지도 않다. 다만 극명하게 상반된 두 가지의 현상을 목격하는 중이다. 우선 월스트리트저널 쪽이다. 기사는 “측근에 의하면(people familiar with the matter)”이라는 표현으로 근거를 대신하고 있다. 정작 일론머스크, 세르게이 브린 등 당사자들에게는 인터뷰 요청조차 없이 프린트된 기사다. 그리고 수많은 매체들이 다시 ‘월스트리트저널에 의하면’이라는 표현으로 근거를 대신하며 복사하기 바쁘다.

이쯤 되면 나중에 어떤 결론이 나든 팩트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우리는 헤드라인만을 보고 모든 것을 이미 판단해버렸고 사실이 밝혀지는 동안 충분한 비난과 증오와 비웃음을 쏟아낸 후가 된다. 급작스럽게 10%나 뛰어올랐던 테슬라 주가도 충분히 떨어뜨리는 효과까지 가져올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 사이트의 방문자와 유료 구독자도 늘었을 테니 목적은 어쩌면 이미 달성된 상태일지도 모른다. 이 기사를 실어 나른 모두가 자기 몫을 여기 보탠 사람들이다. 

반면 같은 시각, 일론 머스크는 어제도 브린을 만났는데 무슨 말도 안되는 허위 보도인가 트위터에서 반박을 시작했다. 과거에도 같은 매체에서 본인에 대한 허위 기사를 내보낸 사건이 밝혀진 일도 함께 상세히 언급했다. 그동안 테슬라 커뮤니티는 트위터에서, 유튜브에서 평소 하던 대로 기사의 팩트를 체크하고 왜 이런 일이 발생하고 있는지 심층적인 분석을 시작했고 트위터와 유튜브의 채널에서 수많은 댓글과 토론이 이어지고 있다. 전자가 일방향이라면 후자는 모든 주장과 대화, 보도가 투명하게 드러나는 중계석이다.

테슬라 유투버들의 팔로어 수를 합하면 약 2억 명에 달한다(각 팔로어의 단순 합계로 추정할 경우). 유투버 중에는 대학교수도 있고 전직 변호사, 엔지니어, 애널리스트, 회사 CEO, AI 전문가 등 모두 테슬라의 기자, 테스터, 마케터, 대외협력팀 역할을 자처하는 사람들이다. 직업은 다 다르지만 공통점은 모두 탐사보도 기자 같다는 것이다. 객관적인 팩트가 드러날 때까지 끝까지 캐고 또 캐고 분석하고 격렬하게 생각을 나눈다.

Georgia University 교수이자 유투버인 Dr. Know-it-all Knows it all가 해당 기사에 대해 올린 의견

이들에게 이번 사건은 새롭지 않다. 이들은 거짓말쟁이로 알려진 그가 사실은 겉과 속이 같은, 거짓말을 모르는 얼마나 비정상적인(?) 사람인지 집요하고 꾸준한 조사를 통해 알게 된 사람들이다. 일론 머스크가 아니라고 했다면 왜 믿을 수밖에 없는지 근거와 의견을 개진하고 있다(그동안 일론 머스크에 대한 전통 매체의 기사만 접한 독자들은 이게 무슨 말인가 의아할 것 같지만). 주장이 아니라 대화의 시작이다.

실제로 일론 머스크에 대한 기사는 고의적이든 무지해서든 잘못된 경우가 많다. 조금만 사실 확인을 해보면 드러날 일도 버젓이 거짓으로 꾸며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면 이 커뮤니티의 사람들은 하나하나 근거를 찾아서 반박하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적나라하게 짚어주는 역할을 한다. 신뢰가 쌓이니 구독자도 늘고 서로 인터뷰에 응하기도 하면서 커뮤니티는 계속 커지고 있다.

우리가 테슬라 분석을 시작한 지는 어느새 10년 가까이 되었는데 대부분의 정확한 정보는 이 커뮤니티를 통해 얻어왔다. 각자 자기 생각을 밝히지만, 그전에 확인할 수 있는 근거와 컨텍스트를 먼저 제시한다. 수많은 링크가 근거로 따라온다. 이를 바탕으로 판단은 내가 할 수 있다. 채널의 구독자들 모두가 이미 댓글에서, 트위터에서 각자의 자리에서 기자 역할을 하고 있으니 검증과 토론도 투명하게 드러난다. 우리와 같이 의심 많은 팔로어의 신뢰를 얻게 된 이들은 (그리고 팔로어들은) 개인이자, 테슬라 커뮤니티를 만드는 유기체이자, 새로운 미디어의 전형이다. 이런 신뢰는 한결같이 모든 정보를 수면 위에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투명성’을 통해 얻어진다.

우리는 매번 포탈에서 일론 머스크에 대한 수많은 오보를 접할 때마다 동시에 이 커뮤니티의 심층 분석을 함께 접해왔다. 하루 동안 이 양쪽이 극단적으로 대립된 메커니즘으로 어떻게 동작하는지 보고 있자니 이 단절된 두 개의 세상이 과연 화해할 수 있을까 회의가 들었다.

그럼 브랜드 신뢰에 금이 갈 수도 있는 이런 기사를 왜 근거도 확인하지 않은 채 내보냈을까? 단순히 방문자와 유료 고객을 더 많이 유입시키기 위해서일까? 단순한 증오든, 기득권과 레거시의 저항이든, 평균에서 너무 벗어나는 일론 머스크의 투명성이 만든 오해든 이유는 많다.

혁신은 기존 시장과 권력을 장악해온 주체들에게는 위협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사기꾼이라고 보도를 해봐도 일론 머스크가 약속한 일들이 10여 년의 세월을 지나 지금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결과물로 나타나는 것까지 막아내지 못했다. 이 거스를 수 없는 파도는 앞으로 닥칠 일이거나 막아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미 일어난 사건이다.

전통적 저널리즘은 매체의 브랜드를 만들었고 이것이 신뢰를 대신해왔다. 대중을 대신한 감시자의 역할이 명확할 때 전문기자들의 소명도 빛이 났다. 그러나 모두가 양방향으로 연결되고 모든 정보가 투명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는 지금, 저널리즘에게 부여된 역할을 포기한다면 이제는 지켜주고 비밀로 간직해줄 언덕도 무기도 없다. 다만 이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게 도와주고 있는 주체가 바로 우리 자신이다. ‘월스트리트 저널에 의하면’이라는 이름표 뒤에 숨지 말고 “왜”라는 질문부터 시작해야 한다.

문법은 바뀌어야 한다. 문법에 대한 이해가 바뀌어야 한다. 조직의 문법, 저널리즘이 정한 문법이 아니라 모든 것이 이제는 ‘한 사람’에서 출발한다. 내가 왜 글을 쓰고 있는지(무엇인가를 생산하고 있는지), 전문 기자도, 우리도, 그 이유가 신뢰를 만들고 관계를 만드는 출발점이다. 모든 것이 이제는 ‘나’에서 출발한다. 분야를 막론하고 가치가 만들어지는 과정이며 서로를 쓰레기 더미에서 구해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사실 이 모든 이야기는 오가닉 미디어오가닉 마케팅에서 여러 글을 통해 충분히 정리했던 것들이다. 그때는 말을 하면, 문제를 정의하고 작동원리를 설명하고 본질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도록 도우면, 세상의 변화에 조금은 일조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글을 썼다. 그때는 희미했던 현상들도 이제는 모두가 이해할 만큼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기존 시스템은 자연스럽게 도태되지 않고 끝까지 저항한다.

언젠가 소멸하겠지만 그 과정에서 파생되는 것은 사회적 불신이다. 모든 영역에서 일어나고 있다. 같은 시대에 있지만 완전히 다른 세상을 사는 사람들의 그룹이 서로 화해할 수 있을까. 문법이 완전히 다르고 형태도 작동원리도 완전히 다른데 가능할까. 우리 사회가 어디까지 견딜 수 있을까. 광야에서의 외침, 이제 해도 저무는데 그만 접고 가야 할까. 오가닉미디어 글을 시작한지 벌써 10년인데 이 긴 시간 동안 과연 나는 무엇을 도왔나.


*판단은 각자에게 맡기며 추가 링크 몇개

일론 머스크는 7월 25일 자신의 트위터에서 월스트리트 저널이 가짜뉴스를 내보냈다고 주장했다. 공교롭게도(?) 무릎꿇고 빌었다는 기사가 나가기 바로 전날 오후, 그는 브린과 파티를 했다는 얘기를 덧붙이면서. 그리고 뉴욕포스트에 브린과 함께 찍은 증거 사진을 보냈고(이어지는 뉴욕포스트 기사) 7월 26일부터 트위터에는 이 파티 사진이 퍼지고 있다. 그럼에도 WSJ의 기사와 트윗은 26일 현재 내려가지도 않고 피드백도 없이 ‘전통적인’ 매체의 위엄을 지키며 얼어있는 상태다.

일론 머스크가 뉴욕포스트에 보낸 사진과 파티의 셰프로 참석한 사람의 증언을 담은 트윗

July 26 2022
Agnès Jiyoung Yun
Founder & CEO @ Organic Media Lab & 프롬
facebook.com/yun.agnes
Instagram: @agnesyun_
Twitter: @agnesyun

6 thoughts on “월스트리트저널 사건으로 본 전통 저널리즘의 종말 (The end of old journalism through the lens of a WSJ-Elon Musk incident)

  1. 포스팅 잘 보았습니다. 기존 언론이 투명성보다는 속도를 중요시 하게 된 것은 레거시 미디어의 생존에 ‘일단 내고 보는 것’이 더 중요한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말씀하신대로 앞으로 투명성이 더 중요하게 받아들여지는 환경이 되면 그 선택압이 기존 미디어를 변화하게 혹은 멸종하게 만들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 정말 공감합니다. 지금은 넓은 의미에서 모두가 기자/특파원이 되고 ‘현장’이라는 개념이 바뀌듯 특종의 개념도 바뀌고 있는데 과거의 프레임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겠지요. 거기에 레거시 미디어가 객관적인 저널리즘의 관점이 아니라 기득권과 권력관계 안에서 의사결정하고 행동할 때 이런 안타까운 결과를 낳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 각자에게 배움이 있다면 이 또한 다음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될 거라 믿습니다. 읽고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조중동만이 원인은 아니겠지요. 하지만 끝이 아니라, 과거의 저널리즘의 시대가 가고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주체가 되는 새로운 저널리즘의 시대가 이미 와있는 것 같습니다. 다만 그 과도기가 너무 길지 않고 혼란스럽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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