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시간의 창조: 선순환의 모멘텀 (Momentum of Virtuous Cycles)

[Why] 시간의 창조: 선순환의 모멘텀 (Momentum of Virtuous Cycles)

<이전 글: [Why] 시간의 해체: 데자뷔에서 유레카로 (From Déjà Vu to Eureka)>

“내가 누군지가 내가 하는 일을 결정하지만,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가 또한 나를 결정한다. 나는 끊임없이 나를 만들어간다. [(…) Ce que nous faisons dépend de ce que nous sommes ; mais il faut ajouter que nous sommes, dans une certaine mesure, ce que nous faisons, et que nous nous créons continuellement nous-mêmes.]1

선순환은 생명체의 운동과도 같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생명력을 갖고 있다. 오늘이 죽어서 과거가 되는 원리가 아니라, 살아서 지속적으로 계속 변화하며 운동 중인 상태, 네트워크 시간의 원리를 따른다. 그래서 살아있는 다른 ‘왜’를 만나고 결합하고 진화한다. 이것이 네트워크 세상에서 가치를 만드는 과정, 시간을 창조하는 과정이다. 지금부터 선순환의 원리를 차분하게 알아보고 네트워크 세상에서 가속도를 만드는 힘, 개인과 세상의 악순환을 선순환으로 흡수시킬 수 있는 힘에 대해 정리하며 시간시리즈의 결론을 준비한다.

선순환의 정의

선순환이란, 나를 위해 일하고 소비하고 사는 것이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고 소비하고 사는 결과가 되고 이것이 나에게 더 큰 가치가 되어 되돌아오는 작용을 말한다. 선순환은 혼자 만들 수 없으며 반드시 다른 사람이 필요하다. 악순환은 악하고 선순환은 선한 것이 아니다. 작동하는 원리 때문에 결과가 달라지는 것뿐이다. 누가 다른 사람을 위해 먹고, 다른 사람을 위해 돈을 벌고, 다른 사람을 위해 돈을 쓰겠는가. 각자의 나를 위한 활동, 사업, 참여가 서로를 위한 결과가 됨으로써 나눌수록 커지는 가치를 만드는 것이 선순환이다.

앞선 글에서 설명한 것처럼 악순환은 “돈을 목적으로 시작해서 돈의 원리를 따라 모두가 움직일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고 돈을 결과물로 나눠갖는 방식으로 커진다”. 나눌수록 작아지는 가치를 만드는 것이 악순환이다. 나를 위해 일하고 소비하고 사는 것이 다른 대상을 희생시키는 결과를 만들고, 이로 인해 내게 돌아오는 손실이 내가 만든 가치보다 더 커지는 작용을 말한다(소탐대실). 선순환이 살아있는 시간을 만드는 원리를 갖고 있다면 악순환은 시간을 소진하고 우리도 소진되는 원리를 갖고 있다. 선순환은 나눌수록 커지는 가치를 축으로 돌아가고, 악순환은 나눌수록 작아지는 가치를 축으로 돌아간다.

선순환의 필요조건

선순환은 두 가지가 필요하다. 이를 통해 가속도를 만들고 악순환을 흡수할 수 있는 힘을 가진다. 혼자든, 팀이든, 조직이든, 규모와 업의 본질에 관계가 없다. “가속도를 만들지 못하는 모든 생명이, 즉 조직이, 이 네트워크 세상에서 소멸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기 때문이다.”

첫째, 중심축이 필요하다

강조해온 것처럼, 중심축은 여러분이 발견한(할) 본질적인 ‘왜’가 감당할 역할이다. 제발 일관된 브랜딩과 마케팅 용어가 아니다. 어떤 조직도 오직 한 사람으로부터 비롯되는 것 말고 이 중심축을 가질 묘책은 없다. 악순환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일생의 모멘텀이자 선순환의 출발점이다. ‘왜’는 어떻게 하면 일과 삶이 하나 되어 충만하게 살 수 있는지, 내 삶을 바쳐 세상을 위해 어떤 가치를 만들고 싶은지, 답을 찾는 사람들을 위한 북극성이다.

내 문제가 아니라, 내가 보고 있는 세상과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 결과가, 나에게 더 큰 가치로 돌아오는 선순환의 시작점이다. 서로 도우며 함께 갈 수 있는 나침반이다. 내 삶의 뿌리가 살아있는 네트워크의 뿌리이며 선순환의 뿌리다. 이 중심이 겉과 속이 같은 네트워크의 존재이유가 된다. 중심축 없이 ‘작게 작게 점점 크게’의 선순환은 일어나지 않는다.

테슬라의 중심축은 “지속가능한 에너지로의 전환을 가속화”하는 것이다. 물질적 가치가 목적이 아니라 인류의 생존, 지속가능한 환경과 같은 존재적 가치가 축이다. 일반적으로 존재적 가치에서 출발하는 프로젝트 또는 조직은 대부분 돈이 없다. 돈이 목적이 아니라고 하니 투자자를 만날 수 없고 돈이 없으니 직원을 고용할 수도 없고 돈을 써서 사람을 모을 수도 없다. 규모는 언제나 미약하게 끝나거나 계란으로 바위치며 패배감으로 끝난다. 정부나 기관에서 주는 보조금과 후원에 의존해서도 선순환을 만드는 원리에 접근하기 어렵다. 아무리 ‘왜’가 명확해도 돈이 없으면 오래 견딜 수 없고 연료없이 멀리 가기 어렵고 참여자를 만들 기회를 갖지 못한다. 작게 작게 더 작게 소멸한다.

지속가능한 에너지로 빠르게 세상이 전환될 수 있도록 ‘희생’하라는 메시지로는 전기차 구매자를 불러올 수 없다. 중심축이 생존을 위해 변질된다면 거기가 끝이다. 그런데 중심축은 선순환을 만드는 원리인 것이지 모두의 목적일 필요도, 그럴 수도 없다. 오히려 모든 참여자에게 물질적 가치를 인센티브로 제공하는 순환이 반드시 필요하다. 테슬라 모델 Y를 구매하는 것이 더 큰 효용이라서 구매했을 뿐인데 그 결과가 중심축에 수렴되는 것이다. 전기차 시장이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오게 되는 데 기여하는 결과를 만든다. 규모를 만들고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물질적 가치와 존재적 가치, 두 가지가 다 선순환으로 작용해야 한다. 먹어야 살고, 살아야 사랑할 수 있다.

우리 랩이 만드는 선순환의 중심축은 ‘한 사람의 변화’다. 입금되면 대신 공부해주고 대신 써주는 컨설팅 보고서가 아니다. 전자가 창조되는 시간이라면, 후자는 사용되는 시간이다. 우리의 ‘왜’는 한 사람의 변화를 돕는 것이다. 이것이 일과 삶이 하나 된 중심축이고 그런 축을 더 많은 사람들이 갖게 되도록 돕고 싶다. 이 축에서 출발하지 않는 일이라면 비싼 컨설팅이라도 하지 않는다.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중심축 이외에 다른 곳에 사용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선순환의 원리로 가속도를 만드는 데에 집중하지 않으면, 제 아무리 이런 연설을 늘어놓고 있는 나도, 돈의 작용과 타협으로 악순환에 빠지는 결과에서 안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일터와 삶에서 한 사람의 변화가 일어나고 네트워크 중심 사고로 전환되면 그 한 사람은 반드시 주변을, 조직을 변화시킨다. 그들이 ‘왜’를 중심축으로 일할 때, 우리의 ‘왜’는 저절로 동료를 만난다. 우리가 돈을 벌기 위해 제안서와 보고서를 쓰는 대신, 생각하고 휴식하고 운동을 하는 시간에도 계속 가치가 만들어진다. 우리도 기꺼이 그들의 자원이 되기를 자처한다. 그들을 돕는 것이 우리를 돕는 결과가 된다. 언제든 기쁘게 달려갈 준비가 되어있다. 나눌수록 커지는 가치(존재)가 중심이 될 때 나눌수록 작아지는 가치(돈)는 수단으로 제 역할을 한다. 함께 만들고 지속가능할 힘이 만들어진다.

둘째, 회전의 힘이 필요하다

다음은 회전의 힘이다. 가속도의 멈출 수 없는 힘이 여기서 만들어진다. 네트워크에는 선형적인 성장이란 없다. 반드시 지수함수적이거나 0이다. 가속도를 만들지 못하는 네트워크(조직)가 시작도 하지 못하고 죽는 이유다. 우리는 일한 만큼 결과를 얻는 것이 당연하고 생각한다. 하루 일하고 1의 가치를 만들어냈으면 다음 하루도 1, 그다음 날도 1의 가치를 만드는 결과는 당연하다. 물론 학습효과로 인해 조금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지만 기본적인 전제가 바뀌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네트워크의 기하급수적 성장을 이해할 수 없다. 네트워크 세상에서 가치는 가속도를 통해 자라나고 가속도를 통해 악순환을 이길 힘을 키운다. 같은 원리로 악순환의 가속도에 소멸될 수도 있다. ‘왜’의 종류나 조직의 크기에 관계가 없다. 업의 본질과 규모에 관계없이 네트워크가 제품, 즉 가치를 혼자 만들지 않고 네트워크를 통해 만들고자 한다면 모두에게 적용된다. 기하급수적 성장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하루 일하고 1의 가치를 만들어냈다면, 다음 하루는 2, 그다음 날은 4, 8, 16… 의 가치를 만들어야 한다. 더 열심히 해서 2배로 생산성을 높일 수는 있지만 8배, 16배의 생산성을 높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실제로 기하급수적 성장은 존재한다. 어떻게 가속도를 이해하고 실행할 것인가?

선형적으로 하루에 한 개씩 만든다고 가정하면, 한 달간 총 30개를 만든다. 하지만 매일 생산량을 10%씩 늘릴 수 있다면 한 달간 생산량은 164개가 된다. 지수함수적이라는 것은 산술적으로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 선형적인 관점으로 보면 매일 10%씩 늘리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방법은 가속도뿐이기 때문이다.

‘왜’를 중심축으로 발생하는 횡가속도는 구심력과 원심력의 상호작용이다. 물체를 끌어당기는 구심력은 ‘왜’를 가진 팀이 동료를 끌어당기는 힘이다. 실행 사이클의 연쇄 작용은 팽창하는 원심력을 만들고 두 힘의 상호작용이 가속도를 만든다. 여기서 가속도는 선형적 시간의 원리와 달리, 열심히, 더 열심히 쥐어짜서 일을 한다고 만들어지지 않는다. 선순환의 법칙에 따른다. 중심축에서 시작하고, 이와 관계없는 모든 것을 걷어내고 가장 단순해져야 한다. 이 과정에서 작은 모멘텀 사이클이 돌면 돌수록 운동의 힘이 커진다.

물체가 오직 운동 상태일 때만 가속도가 발생하는 것처럼, 각 단계의 모멘텀이 다음 단계의 모멘텀을 부르기 때문에 가능하다. 선형적 시간의 개념처럼 구간을 채우고 소모되는 시간이 아니라, 해결해야 할 문제에서 출발한 한 번의 순환이 두 번째 사이클을 만들고 이 작용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순환의 시간이다. 이 연쇄작용이 회전의 힘을 만들고 가속도를 만들도록 3번의 모멘텀이 순환적으로 동작한다.

왜’를 뿌리로 한 사람의 발견의 모멘텀, 팀의 배움의 모멘텀, 나와 팀이 유기체로서 새로운 차원의 발견과 성장을 만드는 창발의 모멘텀이 선순환을 만든다. 선순환은 모멘텀이 만드는 모멘텀의 순환이며 그 결과는 가속도로 나타난다.

모멘텀의 선순환

발견의 모멘텀

첫째, 한 사람의 발견이다. 각자에게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팀으로 일하게 되어 있다. 회사 같은 조직이든 일시적이든, 반드시 협업이 필요하다. 그런데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반드시 한 사람의 발견에서 비롯된다. 내재된 직관에 불이 켜지는 순간이다. 창의적인 업무든 아니든 발견은 반드시 일어나게 되어있다. 같은 기능은 있어도 같은 네트워크는 없는 것처럼 한 사람의 발견은 언제나 저마다 유일하다.

Why 워크숍2을 하다 보면 반드시 한 사람의 발견이 첫 번째 모멘텀으로 발생한다. 그 다음은 이 발견이 나머지를 끌고 간다. ‘왜’에서 출발한 선순환이 살아있는 것이라면, 살아있는 실체를 만드는 첫 단계가 한 사람의 발견에서 시작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은 아무도 가본 적이 없는 길을 가는 것이다. 실험이자 발견, 배움이자 적용, 네트워크를 키우는 과정이 스스로 성장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기존처럼 정해진 어젠다, 열심히 채워야 할 캘린더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 팀이 정의한 문제를 중심으로 하나씩 해결해가는 발견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선순환의 원리에서는 몇 명이 일하고 있는가가 중요하지 않다. 회전의 운동력이 오직 한 사람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성장할 것인가 길을 찾는다. 촘촘하게 구간을 채우며 잘 살았고 새로운 것을 따라가느라 더 열심히 했는데, 자기계발 서적도 넘치게 읽고 성공사례도 열심히 봤는데, 왠지 성장은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성장은 좋은 교육 프로그램, 다양한 업무 경험을 통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되는 것이 아니다. 어차피 많은 정보와 능숙한 기술을 내 뇌와 몸에 힘겹게 다 밀어넣을 필요가 없는 세상이다. 직업의 종말에서 정리했던 것처럼 성장이란 생명의 자람이다. 성장은 외부로부터 주입될 수 없다. 구간을 아무리 잘 채워도 연결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생명이 자라지 못하는 원리와 같다.

발견은 그 성장의 시작이다. 내가 주도적으로 발견해야 성장할 수 있다. 있지만 보지 못하던 것, 알지만 연결하지 못하던 것을 스스로 발견하고 모멘텀을 만나야 불이 켜진다. ‘Why 워크숍’에서도 답을 말해주는 사람은 없다. 온전히 한 사람의 모멘텀이 만들어지도록 돕는 과정만 있다. 발견은 밖에 있지 않고 내 안에 있다. 이 지점을 경험한 나는 과거의 나와 다를 수밖에 없다. 성장의 정의다. 시간이 창조되는 첫 번째 모멘텀이다.

그런데 이 발견이 한 사람 안에 머물면 조직은 발전할 수 없다. 반대로 성장하지 않는 멤버는 조직을 노화시킨다. 오히려 팀이 가속도를 내지 못하도록 조용히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나의 발견이 다음 모멘텀을 만드는 동력이 되려면 동료들의 힘이 필요하다.

배움의 모멘텀

둘째, 다음은 팀의 배움이다. 한 사람의 발견으로부터 팀이 무엇을 배웠는가? ‘Why 워크숍’에서는 한 사람의 발견은 반드시 옆 사람의 발견으로 이어진다. 그 모멘텀을 함께 체득한 결과다. 저절로 적용되고 서로가 서로에게서 배우는, 그 멤버들만의 공유된 체험이 발생한다. 생각은 머리로 하는데 몸이 반응하고 한 팀이 만들어진다.

더 큰 조직에서도 원리는 같다.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동작하는 테슬라의 1만 개의 팀에서는 쉴 틈 없이 바쁜 업무에도 번아웃보다 오히려 ‘성장’했다는 참여자들의 증언이 더 많이 쏟아진다. 문제해결을 중심으로 모이고 흩어지는 팀에서 서로를 통한 배움은 서로를 성장시키는 과정이 된다.

대부분의 조직에서 한 사람의 직관과 발견은 팀의 배움이 되지 못한다. 조직의 다양한 이유로 커뮤니케이션 오류가 발생하고 한 방향을 보지 못하므로 동상이몽으로 끝난다. 마라톤 회의로 너덜너덜해진 몸과 쓰고 없는 시간만 두고 보면 아예 발견이 없는 편이 나을지 모른다. 내가 오랫동안 반복해서 저지른 시행착오처럼 의사결정자에게 회의는 듣기보다 설득을 위한 자리가 되고, 공감하지 못하는 팀원에게 회의는 받아 적는 자리가 된다. 계약관계의 협업도 대부분 일회적인 데이트로 끝나고 각자의 이익을 따라 헤어지기 바쁘다.

오직 중심축에서 파생된 문제 해결이 목적일 때 상황은 달라진다. 회의는 설득과 주장보다 발견을 만드는 협업의 현장이 된다. 시간을 채우는 모든 반복적인 일은 0이 되도록 만드는 대신, 모멘텀의 사이클은 오직 구체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로 100% 채워진다. 이때 실험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개발능력이 있는 조직에서 흔히 일어나는 시행착오이기도 하다. MVP(Minimum Viable Product)도 쉽게 만들고 실험도 쉽게 할 수 있으니 실험 자체가 목적이 되는 경우를 많이 목격한다. 하지만 언제나 구체화된 문제정의만이 모멘텀이 있는 실행을 만든다. 선순환이란 모멘텀을 자산으로 더 큰 모멘텀을 만드는 것이다. 이 과정 없이는 가치는 남지 않고 시간은 흘러 사라진다.

결국 팀의 문제해결 과정이란 서로의 발견을 돕는 과정이다. 이 과정이 팀을 진화시킨다. 남이 발견한 것을 알려준다고 팀이 저절로 진화하지 않는다. 발견이 발견을 낳고 서로 배우는 주도적 과정이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각자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위로 갈수록 권력과 정보가 집중되는 레거시 조직에서는 불가능할 것이다. 내가 하고 있는 사소한 업무가 왜 필요한지 알 수 있고 좀 더 확대하면 어디서 기인하고 좀 더 확대하다 보면 어떤 ‘왜’로부터 발생한 것인지 알 수 있는, 내가 확장을 원하기만 한다면 투명하게 전체를 낱낱이 볼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할 것이다.

주인의식으로 일한다는 것은 열정페이가 잘 동작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내 일이 어디에 있는지 좌표를 알고, 그로부터 스스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고 책임을 선택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이 한 개인이, 사원이든 사장님이든 차별 없이, 팀의 배움을 만든다. 서로를 통해 배우고 한 방향을 보며 가는 살아있는 조직이 된다.

창발(emergence)의 모멘텀

셋째, 그 결과는 창발(emergence)로 나타난다. 팀은 유기체처럼 자가조직(self-organised) 되며 기존에는 볼 수 없고 보이지 않았던 문제의 정의와 새로운 발견을 낳는다. ‘Why 워크숍’에서 참여자들은 본래 일과 삶이 하나 될 수 있는 문제를 찾으러 온다. 그런데 집요한 시간들, 도망치고 싶은 순간들을 지나 발견을 만나고 물이 끓는 것을 경험하고 서로를 통해 배우는 과정에서 완전히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는데, 그것은 이 모든 과정이 세상의 문제를 찾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여행이었다는 사실이다. 이 단계에서 문제는 저절로 정의된다. 새로운 차원의 모멘텀 사이클이 시작된다.

일시적 협업이든, 회사의 조직이든, ‘한번 해보자’ 정도로 창발의 모멘텀까지 가기 어려울 것이다. 한번 해보는 것은 포기도 타협도 쉽고 변명도 많다. 언제나 선형적 시간 안의 나의 관성이 나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실험은 반복되어야 하고 집요하게 연쇄적으로 커지는 배움의 사이클을 만들어야 한다. 이 사이클 주기는 짧으면 짧을수록 좋다. 테슬라처럼 3시간의 사이클까지는 아니더라도 하나의 문제에 집중해서 답을 찾고, 그 답을 통한 팀의 배움이 온전하다면 다음 단계가 저절로 시작될 가속도를 만들게 된다.

여기서부터 문제해결 능력은 더 이상 분석적이거나 과거의 시간에 머물러 있지 않고 앞으로 가게 되어 있다. 살아있는 네트워크의 속성이 동작하기 때문이다. 시간의 비선형성은 이 창발이라는 모멘텀을 통해 빚어진다. 선순환이 시간의 가속도를 만들고 창조된 시간이 선순환의 힘을 더욱 증폭시킨다. 이 발견, 배움, 창발의 사이클이 구간을 채우는 방식으로 소모되는 선형적 시간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변화를 만든다.

변화가 한 번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성장처럼 지속적인 변화의 과정에서 더 무서운 속도를 만든다. 선형적 시간에서 볼 수 없는 다중(multi-)의 시간을 만든다. 한 사람의 발견과 배움과 창발이 한 사람에서 끝나지 않고 서로의 의식을 확장하며 기하급수적인 결과를 만든다. 창발의 모멘텀에는 끝이 없다. 더 큰 선순환의 연속을 부르는 과정 자체다. 멈출 수 없는 힘이 동작하기 시작하는 시간, 여기 참여하는 내가, 창조하는 시간이다.

시간의 창조가 은유적이라고 생각하는 독자들을 위해 그 실체를 건조하게라도 그려보면 다음과 같다.

한 달간 매일 같은 양을 생산한다고 가정하면 지수함수적 시간 관점에서는 점차 투입되는 시간이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이 그래프는 선형적 시간의 관점에 대입하여 창조된 시간을 이해할 수 있도록 단순화한 것이다. 실제로 창조된 시간이란 산술적 시간의 의미를 넘어선 차원임은 본문에서 밝히고 있다.

작게 작게 점점 크게

이해를 돕기 위해 최대한 단순화시킨 예시지만 메시지는 명확하다. 30일 후에는 나에게 없던 7시간 57분이 만들어진 것이다. 검은선 아래와 빨간 선 위의 영역이 창조된 시간이다. 30일간 19일, 하루 8시간 기준으로 152시간 이상을 만들어낸 것이다. 선형적 시간의 관점에서도 이와 같이 시간이 만들어지지만, 우리가 얘기하는 시간의 창조는 한 차원을 더 나아간다. 선형적 시간을 사는 시대를 시뮬레이션으로 만들어버리고 다른 차원(dimension), 네트워크의 시간이 지배하는 새로운 세상을, 한 사람, 한 사람이 창조한다.

이때 성장은 비로소 내 안에 있지 않다. 나와 세상과의 접점에서 일어난다. 내가 발견한 ‘왜’로부터 세상을 변화시키는 과정, 살아있는 유기체로 조직이 성장하는 과정을 만드는 주체, 한 사람이다. 안과 밖의 구분 없이, 월급을 받는 사람과 돈을 내는 사람이 함께 일하는 결과를 만든다. 문제해결을 위한 선순환이 동작했을 뿐인데, 그때부터 고객(참여자)을 만나러 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살아있는 네트워크는 생성되어 있다.

사이클의 선순환은 내가 1을 부었을 때 2, 4, 8, 16으로 나타난다. 내 대신 일하는 네트워크의 참여자들이 창발의 사이클에 합류하고, 결과는 커지는데 나의 노력이 점차 줄어드는 경험, 네트워크의 성장이다. 내가 혼자 반복해야 하는 비용이 점차 줄어들고, 문제들이 내 손을 일일이 거쳐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단번에 기하급수적으로 해결되는 경험이, 가속도를 만드는 발견과 배움과 창발의 선순환이 주는 경험이다.

이 경험이 무서운 이유는 서로의 습관을 바꾸고, 삶을 바꾸고 의식을 확장하는 규모를 만들기 때문이다. 선순환이 선순환을 일으킨다. 이어지는 결론에서 맺음 할 내용이다.

<이어지는 글: [Why] 시간의 연결: 선순환의 선순환>

<추천 글>

* 많은 공유와 피드백 부탁드리고 글을 인용하실 때에는 반드시 다음과 같이 (링크를 포함한) 출처를 밝혀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 인용 예시: 윤지영, [Why] 시간의 창조: 선순환의 모멘텀 (Momentum of Virtuous Cycles), 오가닉 미디어랩, 2024, https://organicmedialab.com/2024/03/21/why-momentum-of-virtuous-cycles/

Mar 21, 2024

Dr. Agnès Yun (윤지영)
Founder & CEO, Organic Media Lab
email: yun@organicmedialab.com
X (Twitter): @agnesyun
Linkedin: agnesyun

  1. Henri Bergson, L’évolution créatrice (1907), Les Échos du Maquis, 2013, p. 14. ↩︎
  2. 기업과 학교에서만 진행해온 워크숍을 개인을 대상으로 확장했다. 각자의 ‘왜’를 찾는 치열한 시간이며 약 5명이 그룹으로 진행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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