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위드스페이스] 워크숍 공간투어 @우이동

우이동은 워크숍으로 두 번을 갔다. 원래는 내 인생에 우이동을 가본 적이 있나 싶은 낯설고 먼 곳이었다. 처음에 우리 멤버가 이번에는 펜드로잉 전시가 열리는 우이동 선운각을 가자 했을 때 ‘금요일 오후 강남에서 1시간 반은 걸릴 텐데’ 여기까지 꼭 가야 하나 투덜댔다. 그러던 내가 그다음 주 내 발로 또 찾아갔다. 2주 차 워크숍을 연거푸 우이동으로 가자고 제안한 사람이 내가 된 사연은 이렇다.

국립공원인가, 카페인가

선운각이라는 곳에 도착하자 국립공원처럼 자연과 건축물의 경계가 없는 이런 곳이 어떻게 개인 소유의 카페일 수 있나 어리둥절했다.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과거 유명 요정이었다는 사실은 방문 후에야 알았다. 지금은 카페 겸 웨딩홀로 사용된다는 이 거대한 공간은 대한민국의 씁쓸한 역사를 안고 있는 증거이기도 했다.

차를 세우고 돌담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야 보이는 카페 입구

북한산 자락 절경에 위치한 궁궐처럼 웅장한 문을 지나 차로 한참 더 올라가면 한옥이 나온다. 외부 전경과 달리 내부 카페 인테리어는 평범하거나 많이 아쉬웠다. ‘이게 최선인가’ 싶은 카페 공간을 한켠에 지나자 펜드로잉 전시가 되어 있는 복도가 이어진다. 카페 공간도 전시도 아쉬움이 많았으니 이에 대한 자세한 얘기는 생략해도 좋겠다.

전시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는 내부 복도

길을 따라 들어가니 지금은 결혼식 피로연 장소 정도로 쓰일 법한 중정과 숲을 마주한 방들이 이어졌다. 구석구석 공간을 발견하는 재미는 있었지만 여기서 뭔가 집중해서 일할 수 있는 자리는 발견하지 못했다.

결혼식장 등으로 활용되고 있는 내부 중정
한옥 스타일의 방과 복도가 보존되어 있는 내부

보통은 어떻게 해서든 결과물을 뽑아내는데 여기서는 모두 상황이 비슷한 것 같았다. 각자 흩어져서 작업하고 잠시 모여 숙제만 정리하고 마치기로 했다. 그렇게 겨우 건진 작업 공간이 루프탑. 자연이 잠시의 몰입을 주기 충분했다. 이렇다 할 인테리어를 하지 않고 차라리 테이블과 의자만 올려놓은 널찍한 공간이 초록과 마주하고 있으니 더없이 좋았다. 더운 날씨 탓에 멤버들은 에어컨이 있는 실내를 선택했지만 가을에는 워크숍 공간으로 손색이 없을 것 같았다.

선운각 루프탑.

멋 내지 않은 옛날 맛 ‘초가집’

왠지 소득이 없는 것 같은 날, 그래도 밥은 잘 먹자며 찾아간 곳은 ‘초가집’이라는 한식당이었다. 선운각에서 정말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었는데 여기서 반전이 한번 일어난다. 우리의 허탈한 마음을 위로해 줄 만찬이 기다리고 있는 줄은 몰랐으니까. 식당은 탁 트인 공간 없이 여러 작은방과 마당으로 분할된 구조였는데 오래된 주택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미리 주문해놓은 오리백숙이 곧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반찬들이 나왔다. 처음에는 김치 깍두기, 시래기 된장 무침 등 흔한 반찬을 한 젓가락씩 맛보려고 했다. 그런데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갑자기 손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믿을만한 지인의 추천이 아니라 검색으로 찾았고 금요일 이른 저녁에 손님도 우리밖에 없었다. 의심의 마음으로 반찬을 집어 들었다가 우리는 결국 오리 백숙이 나오기 전에 모든 반찬 리필을 요청하는 사태를 만들고 만다.

무방비 상태로 반찬을 다 먹어버리고 뒤늦게 남긴 백숙사진.

오리 백숙도 담백했다. 허겁지겁 “와, 맛집이네” 칭찬을 거듭하며 국물까지 깔끔하게 순식간에 해치웠다. 의심은 감사로 바뀌고 입구에서 기념사진까지 찍으며 잘 먹었다는 인사를 하고 나왔다. 알고 보니 같은 자리에서 50년이 넘도록 한정식을 해온 서울시에서 미래유산으로 지정한 식당이었다. 열심히 일한 만큼 잘 먹는 것도 중요한 팀에게 더없이 깔끔한 마무리였다.

오늘 못다 나간 진도는 다음 주에 더하자며 어둑어둑 집으로 향했는데 여기서 뜻하지 않게 선물 같은 두 번째 반전을 맞는다.

북한산 계곡이 흐르는 테라스

어? 저 멋진 집은 뭐지? 카펜가? 그렇게 지나쳤으면 큰일 날 뻔한 ‘카페 산아래’. 오늘 워크숍 장소가 끝내 아쉬웠는지 여기를 지나칠 수가 없었고 왜 여기로 진작 오지 않았냐며 공간을 구석구석 둘러봤다. 내부도 좋았지만 클라이맥스는 유리 문을 열고 나갈 수 있는 테라스였는데 시원한 계곡물이 폭포처럼(?) 흐르는 놀라운 공간이 숨어있었다. 어떻게 여기 앉아보지도 않고 떠난단 말인가.

우리는 카운터로 갔다. 그리고 흑임자 라떼와 생전 카페에서 안사먹는 크로플도 시켰다. 왠지 기대감으로 들뜬 기분에 ‘저희가 직접 만들어요’라는 말까지 듣고 어떻게 그냥 간단 말인가.

계곡물이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저녁의 선선한 공기를 마시며 흑임자 라떼 한잔 마시고 바삭한 크로플 한입 먹으니 반짝반짝 별빛이 쏟아지는 듯 머리가 맑아졌다. 갑자기 노트북을 켜고 오늘 못 나간 진도를 폭풍처럼 나가고 여기가 워크숍 명소라며 손뼉을 쳤다. 그렇다. 그렇게 그다음 주 워크숍을 진행하러 내 발로 우이동까지 또 걸어들어간 것이다. 계곡의 물소리 때문인지, 파라솔 아래 아늑하고 집중 잘되는 테이블 때문인지, 바삭한 크로플 때문인지는 여러분이 직접 가보시고 판단해보시기 바란다.

이날의 저녁은 반드시 ‘우리콩 순두부‘에서 먹으리라 만장일치로 결정했었는데 워크숍은 7시에 끝났고 우리 팀답지 않게 결국 밥시간을 놓치고 말았다(마지막 주문이 6시 반이었다). 파주 장단콩으로 한식간장을 만드는 ‘구본일발효’의 선생님이 수십 년간 운영해온 순두부집이다. 우이동에 온 김에 꼭 가보자 했는데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마음을 추스리고 가까운 아무 집이나 찾아갔다가 벌어진 참사, 집에 와서 밤 10시에 밥을 먹게 된 사연은 쓰지 않기로 하자. 치열했던 15번째 워크숍의 아름다운 기억만 간직하기로 한다.

우이동은 지난 6월의 기록이다. 얼굴은 웃고 있지만 이때만 해도 아직 뿌연 연기 속이었다. 목적지에 도착이나 할 수 있을지 괴로움의 시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매주 이시간이 기다려지는 이유를 우리는 서로 묻지 않았다. 일주일이 지나면 어김없이 지난주보다 앞으로 가있었다. 그렇게 두번째 계절을 보냈다.

September 6 2022
Agnès Jiyoung Yun
Founder & CEO @ Organic Media Lab & 프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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